낯선 것의 불편함에 대하여
낯선 것의 불편함에 대하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2.2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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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일은 늘 걱정이 앞선다. 끝없는 고뇌의 길, 어느 곳으로 향할지 아무도 모르는 우리네의 삶…. 가끔은 걱정이 앞을 가려 길이 안 보일 때도 있다. 이럴 땐 한발 뒤로 물러나서 기다려보자. 안개에 갇혀 안 보이던 길이 저절로 열릴 수도 있으니까.

지난해 8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무서워 한국으로 피신한 아프간 특별기여자 29가구 157명이 얼마 전 동구 서부동에 새 보금자리를 차렸다. 이들이 회사가 마련해 준 사택에서 2년간 머문다는 소식을 들은 서부동 주민들의 염려는 예상 밖으로 크다. 또 난민 자녀 28명이 가까운 초등학교에 배정된다는 소식에 이 학교 학부모들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인다. 저 아이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탓이다.

지역 방송과 신문에서 계속된 찬반 논란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찬반 견해는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 차이가 불편함과 삐걱거리는 소리로 이어져 안쓰러웠다. 동구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서부동 지인의 하소연이다. “주민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말 한마디 없이 일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이 억울하다. 난민들이 한곳에 몰려 사는 것도 꺼림칙하고. 난민 자녀가 입학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불편을 겪지 않을까, 그것도 걱정이다.” 방어동의 지인도 생각을 말했다. “우리 국민도 ‘난민’ 시절이 있었다. 생명과 안전을 찾아 모든 걸 버리고 급하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

의견은 서로 달랐다. 낯섦이나 이슬람문화에 대한 불신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감으로 그들을 혐오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까. 나와 내 가족의 일이라면…. 그들의 종교가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우리에게 강요하진 않을 것이고, 그들이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고 친구에게 먹지 말라고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쪽 풍습에 젖어 들어 익숙해지지 않을까. 부모들이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미리 선을 긋고 바라보는 자세는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추위가 매서운 날 난민들이 산다는 곳을 둘러본다. 중학생 또래 아이들 서넛이 울타리 옆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가까이 가자 “안녕하세요”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들이 더없이 반가웠다. 그들은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배웠고, 머잖아 한국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온 아이에게 “안 추우냐”고 물었더니 “괜찮아요”라고 답한다.

아파트 마당에서는 초등학생과 유치원 꼬마들이 벌써 친구가 되어 왁자지껄 장난을 치고 논다. 못 알아듣는 말은 구글 ‘페르시아 번역기’에서 찾아 의사를 교환하고, 이름과 나이를 알아가며 친구가 되고 있었다. 난민 남자분이 휴대폰을 들고 다가와 한국주소 확인을 부탁한다. 검색한 아이들이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아낌없이 나누려는 이들의 모습이 물질적 나눔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아이들을 보면서 난민 문제로 괜히 걱정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선을 긋고 문을 닫아 소통이 어려운데, 아이들은 문을 열어 벌써 저만큼 달려나가 친구가 되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아파트 마당을 들썩이게 한다. 운동회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왁자지껄함이다.

난민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한국 대사관, 바그람 한국병원, 직업훈련원 같은 곳에서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위해’ 애쓴 공익기여자들이다. 꿈을 안고 한국을 선택한 이들을 따돌리기보다는 오히려 따뜻한 손을 내밀어 보자. 그들의 어눌한 언어가 부드러워져서 하나가 될 때까지…….

김뱅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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