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잡으며 살고 싶다던 너는,
고기 잡으며 살고 싶다던 너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2.2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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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 학생한테 ‘선생님은 왜 교사가 되셨어요?’라는 귀여운 질문을 받았다. 답을 하기에는 너무나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그냥 학생이 예쁘고 가끔씩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라는 짧은 말로 맺었지만, 단어를 덧붙여 교육사회학적 고민을 품게 된 일화를 떠올려본다.

나는 학구열이 좋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고 학교와 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다시 느끼고자 새내기 때 모교로 멘토링을 갔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학생들을 만났고, 학습 성적도 상승 곡선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교육은 희망적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고 재확인했다. 그리고 멘토링을 하는 동안 나도 희망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된 것 같아서 이따금 뿌듯했다.

부푼 꿈을 안고 대학교 2학년 때는 6학년 학생이 8명밖에 안 되는 어촌 지역에 있는 학교로 신청했다. 교육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밝은 버팀목이 되어 꿈을 키워주는 멘토가 되는 포부를 가졌고 학생 H를 만났다.

H는 똑똑한 학생이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둘을 알았고 특히 수학 문제를 잘 풀었고 운동신경도 좋았다. 하지만 같이 멘토링을 하는 학생들에게 자주 화를 내며 신체적으로도 괴롭혔고 온전히 수업 진행이 힘들었다.

정말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H를 향한 미움이 커졌다. 몇 번을 참고 나서야 담임선생님께 한탄을 쏟아냈는데, 사실 H의 아버지가 가부장적 태도로 어머니와 여동생을 향한 폭력이 심하고 H도 똑같이 행동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학교에서도 노력했지만, 상담 치료도 학부모의 동의와 지지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상항에서 개선이 쉽지 않다고 하셨다.

H는 결국 가정환경 구조의 피해자였구나 하고 느낀 순간 아이를 미워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꿈틀거렸다.

어느 날 교실 창문을 통해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H에게 물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나는 꽤 번듯한 직업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H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그냥 고기 잡고 살래요’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적 없어?’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아빠도 맨날 고기잡으러 가는데요’ 정말 H는 고기가 잡고 싶었던 걸까? 왜 어부 그 이상을 생각한 적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H가 꿈꾸고 바라보는 바다 위에서의 꿈이 왜 고기잡이배만큼일까, 세계를 누비는 여객선은 될 수 없을까 생각했다. 이 질문이 나의 교육사회학적 고민의 시작이었다.

꿈이 개인의 성격, 취향 그리고 노력만으로 형성되지 않음을 그제서야 어렴풋이 느꼈다.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만큼 꿈은 만들어진다. 나도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좁은 경험에 기반한 잣대와 판단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어쩌다 우연하게도 나에게는 교육이 희망이고 꿈이었지만 H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의무교육으로 다녀야 하는 사회 제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쇠사슬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슬프게도, 그 이후로 더 많은 학생을 만나면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뒤에는 얼마나 치열한 사회학적 관계가 반영되어 있는지 더욱 선명하게 느꼈다. 개인의 삶에 미치는 사회 구조적 요인은 무엇이고 우리가 느끼지 못했거나 추상적으로나마 느끼고 있는 구조적인 교육 불평등을 촘촘히 감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자 결심했다. 너의 꿈의 크기는 경제적 크기만큼 한정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렀고 너는 성인이 되었다. 바다를 볼 때마다 매년 꼭 한 번씩 궁금해진다. 잘 지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 동고동락하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혹시나 이 글을 마주하는 학생들에게도 묻고 싶다. 너의 꿈은 어떻게 꾸게 된 것이고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교육 불평등은 무엇일까.

조윤이 현대청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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