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선행 과제
교사의 선행 과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2.16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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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논의는 언제나 한가지로 귀결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실제적 사유를 해야 한다는 점. 교육을 실제적 사태 속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현장에서의 교육적 사태는 언제나 교사의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사에게 주는 ‘교육 실천가’라는 지위는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말이 ‘교사들은 실천만 하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것을 규정하거나, 이름을 지을 때 그것의 가장 특징적인 것 또는 가장 강조되는 내용이나 성격으로 명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실천가’라는 말은 표면상 드러나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실천만 하면 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질문을 ‘교사가 해야 할 일이 실천만이 전부인가?’라고 바꿔보자. 그렇게 하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사실 ‘실천’이라는 말은, 실천해야 할 내용이 그 이전에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쓸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무엇을 실천한다고 할 때는 그 내용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취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유 없는 행동이 있을 수도 있다. 감정의 고조라든지, 느낌과 본능에 충실한 행동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이유 없는 행동들을 교사가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교육이라는 특별한 사태 속에서, 게다가 교육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교사가?

만약, 교사가 교육적 사태 속에서 감정, 느낌, 본능에만 충실한 수업을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육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실천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내용에 대한 고민과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선행 과정도 없이 실천한다는 것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우리나라에서 교사는 ‘하라는 대로만 가르치면 된다’는 구조 속에 갇혀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고민해 볼 기회가 적은 것이 사실이다. 이때, 교사들이 가르치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모르고 교과서대로만 가르치기에 급급하다면 이 수업을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간혹, 교과서대로만 가르치면 된다고 말하는 교사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자만심 가득한 말이며 동시에 무책임한 말인가? 교육에 대한 이해 없이 교과서대로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원칙적으로 무언가에 대한 이해 없이 그것을 그대로 따를 수 있다는 것이 가당키는 한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수고로움 없이 어떻게 교과서를 학교와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실천에 앞서 선행 질문을 하지 않고 교과서대로 가르친다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겠다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오늘날 교사의 위상이 크게 떨어진 것이 외부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기인한다는 말은, 어쩌면 이런 거짓말을 두고서 하는 말일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말한 교육과정이나 교육에 대한 이해를 통해 교과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방향이다. 사실, 선행 과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본 후라면 교과서대로만 수업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도 그것을 직시해야만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는 법이다. 그동안 순진한 교사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라에서 가르치라는 대로 수업하면 된다든가, 교과서대로 수업할 수 있다는 믿음이 무능함을 뜻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교사들이 지금도 학생들 앞에서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서 있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실제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심문규 울산중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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