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무교”
“종교는?”…“무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1.24 22:0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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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남짓한 길을 걸어서 출퇴근하는 날엔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 환상 같은 것이 있다. 골목마다 즐비한 특수 업종의 간판들이 그것. 밀집도에 따라 다닥다닥 붙은 곳도 있고 일고여덟 집을 건너뛴 곳도 있다.

옛날엔 간판 옆에 대나무 가지를 내거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세태 변화 탓인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태극기를 내걸거나 흰색·붉은색·초록빛 깃발을 줄줄이 매달거나 문 앞에 대나무 화분을 내놓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간판의 글귀들이다. ‘사주’가 전문이라는 <영혼 치유사>는 그런대로 애교 만점이다. 하지만 어떤 표현은 섬뜩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작두▽▽>이 대표적이다. 한번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간판 이름의 특징과 공통점을 찾고 싶었던 것.

휴대전화 카메라가 요긴하게 쓰였다. 보이는 대로 찍어서 담았다. 그러기를 이틀이나 했을까. 그만 맥을 풀고 말았다. 바둑판처럼 네모 정연한 골목길이었지만 간판 숫자가 너무 많아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곳간을 열어 본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살펴보니 ∼선녀, ∼보살, ∼장군, ∼동자가 유난히 많았다. ∼천황, ∼대신, ∼도령, ∼도인, ∼도사, ∼명도도 있었다. OO천황, △△장군을 동시에 모시는 집도 있었다. ∼암, ∼당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고 ∼정사라는 표현도 섞여 있었다. 다른 종파이면서 ‘대한불교 조계종’을 팔며 궁합·택일을 봐준다는 위장 사례도 찾아낼 수 있었다. 불교계에서 두루 쓰이는 ‘卍(만)자’나 태극문양도 빠지면 섭섭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찌 이리도 많은 것일까. 때로는 토속, 민속이란 이름으로 무속(巫俗)이 성행하는 이 현실은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성직자가 인도하는 ‘고등종교’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특수 업종의 간판들이, 그것도 대형 교회를 에워싸듯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 현실은 무슨 말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놓고도 ‘혹세무민’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몰아세울 수가 있을까? 온갖 의문부호가 내 신성한 사유의 공간을 바이러스처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어느 지인에게 털어놓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도 섣불리 답하기를 꺼리는 눈치였다. ‘역술’, ‘점성술’이니 ‘철학’이니 하는 용어들의 뜻풀이는 물론 ‘굿’이니 ‘세습무’니 ‘강신무’니 하는 말의 개념 정리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혀 무의미한 문답 교환은 아니었다. 무속 신앙의 숭배 대상에는 중국 도교에 근거를 둔 신선(신선 사상)이 있다는 말이며, 일본의 신도와 우리네 무속 신앙이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주장도 자양분으로 삼을 만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털웃음을 웃던 지인이 우스갯소리를 한마디 던졌다. “어떤 이에게 가진 종교를 물었더니 ‘무교’라고 답하더랍니다. ‘무교(無敎)’가 아니라 ‘무교(巫敎)’라고 말입니다.”

문득 대학생 때 집필 의뢰차 만난 적 있는, 현재 구순을 바라보는 전위예술가 무세중(巫世中) 선생의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 선생은, 당신의 본디 성이 ‘김(金)’이었으나 당신 나름의 예술혼을 불사르기 위해 ‘무(巫)’로 바꾸었다고 말씀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대선이 겨우 40여일밖에 안 남은 요즘 정치권에 바람 잘 날이 없다. 바로 그 ‘무(巫)’ 때문이기도 하다. 한쪽 진영은 공격으로 바쁘고 다른 쪽 진영은 수비로 바쁘다. 그러나 표심에 미치는 영향을 어느 한쪽은 잘못 판단하고 있으니 선거전략을 과감히 바꾸라는 조언이라도 해주고 싶다. “교회 다니는 사람도 점바치를 찾는다던데….” 누군가의 귀띔처럼 ‘무(巫)’를 숭상하는 인간군상이 의외로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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