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값, 죽값 그리고 밥값
여물값, 죽값 그리고 밥값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1.17 22: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래 자장가 중에 “새는 낭게(나무)서 자고, 쥐는 궁게(구멍)서 자고, 붕어 새끼 돌 밑에서 잠잔다.”라는 표현이 있다. 새와 쥐와 붕어는 각각 잠자리가 다르다는 교육적 효과도 함께한다. 조상들의 지혜로운 교육 방법을 알 수 있다. 또 조상은 소, 돼지와 사람이 먹는 것을 각각 다르게 표현했다. ‘소, 여물 줘라’, ‘돼지, 죽 줘라’, ‘사람, 밥 줘라’ 한다. 즉 소가 먹는 것을 여물, 돼지가 먹는 것을 죽, 사람이 먹는 것을 밥이라 각각 불렀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한정된 표현은 아니다. 사람은 때에 따라 밥과 죽을 먹으면서 개밥, 고양이밥, 쇠죽을 끓인다, ‘죽 쒀서(죽 쒀) 개 준다’, ‘개밥에 도토리’와 같은 표현에서 개, 고양이, 소의 먹이도 밥과 죽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따라 먹이를 다르게 부른 이유는 아마도 소와 돼지 그리고 사람의 가치에 차이를 두고자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물론 가치 차이는 먹는 것에 대한 표현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 7:6)는 성경 말씀에서 알 수 있다. 또, 군대 장교(將校)문화에서 ‘장교’와 ‘쟁교’라는 표현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장교는 행동이 올바른 장교를 일컫는 말이고 그렇지 않으면 ‘쟁교’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먹은 것에 대한 값을 냉정하게 평가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소는 여물값, 돼지는 죽값, 사람은 밥값이라고 표현한다. 소는 여물을 먹고 밭을 갈고 짐을 나르며, 죽어서는 고기로 자녀들에게 학자금을 남겨 여물값을 톡톡히 한다. 돼지 역시 죽으로 표현되는 농사의 부산물과 음식의 찌꺼기를 먹는다. 잔치나 상례와 같은 길흉사(吉凶事) 때는 부조로 여물값 못지않게 죽값을 한다.

사람이 어느 정도 자라면 어른은 한결같이 ‘밥값’을 말한다. “허허 그놈, 벌써 밥값을 하네,”“허구한 날 빈둥거리고 놀면서 밥값은 언제 하려느냐”, “밥만 축낸다”, “밥벌이는 해야지”, “밥 먹자고 하는 짓”과 같은 예문에서 밥값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람에게 밥은 생물학적으로는 삶과 죽음의 중심이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밥을 먹고 나니 기운이 충만하다(飯食已訖色力充)’ 혹은 ‘밥숟가락 놓았다’라는 말에서는 생사(生死)의 두 가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인도불교에서 수행자가 걸식하는 것도 밥이고 한국불교에서 예경(禮敬)의 대상 불상(佛像)에 올리는 마지(摩旨)도 밥이다.

코로나19 시대인 요즈음 언론매체에서는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한 직원의 행동, 신축아파트 공사장의 붕괴사고 등 가슴 아픈 사건과 사연들을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마(軍馬)처럼 전하고 있다. 이 모두는 밥값을 제대로 하지 못한 시부지기(時不至起=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일어나는 행위)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때가 되면, 석류가 벌어지고 황율이 떨어지고, 제비와 떼까마귀가 고향으로 오고 간다.

〈성경〉은 “공중의 학(鶴)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예레미야 8:7)라고 기록했다. 때를 아는 것이 순종임을 알 수 있다. 전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조종사 고(故) 심정민(29) 소령은 민간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끝내 탈출하지 않고 조종간을 잡고 산화했다고 전한다. 추락한 기종은 도입한 지 30년이 넘어 정년을 넘긴 노후 전투기로 전해진다. 같은 비행단에서 근무했던 필자로서는 더욱 가슴 아픈 사건이다.

어느 시대든 낡은 가죽 부대의 관행과 통념으로 답습하는 사람과 조직이 있다. 사람은 당돌하고 교만하여 천연덕스럽게 행동하며, 조직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를 〈성경〉에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에 비유한다. 정철도 한마디 했다.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사람이 되어 나서 옳지 곧 못하면/ 마소를 갓 고깔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정철의 ‘마을 사람들아’).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