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牛耳)와 팔랑귀 그리고 여이(驢耳)
우이(牛耳)와 팔랑귀 그리고 여이(驢耳)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1.03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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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牛耳)는 ‘쇠귀’, 팔랑귀는 ‘가벼운 귀’, 여이(驢耳)는 ‘당나귀 귀’를 뜻하는 말이다. 귀는 불교에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즉 육근(六根)의 하나이며, 육경(六境)에서는 성(聲) 즉 소리를 듣고 인식하고 판단하는 기관이다. 귀는 인문학적으로 크게 쇠귀, 팔랑귀, 당나귀 귀의 셋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쇠귀’다. ‘우이독경(牛耳讀經)’이란 한자어관용구는 ‘쇠귀에 경 읽기’라는 뜻으로,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제 고집만 부릴 때 이를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심청전〉에서 아무 능력이 없는 심 봉사가 딸 심청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겠다고 결정한 것과 〈흥부전〉에서 아우 흥부가 갖다 드리겠다는 화초장(花草匠)을 형 놀부가 기어이 직접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또 자기는 듣고 남은 못 듣는 것과 다른 사람은 알아도 자기는 모르는 것을 의미하는 이명비한(耳鳴鼻?. 이명과 코골이)도 쇠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팔랑귀’이다. 팔랑귀는 줏대가 없어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잘 흔들리는 성질 또는 그런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문학적으로는 약하게 부는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가랑잎을 묘사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개펄에 서식하는 ‘팔랑게’도 작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를 들어보자. 동화 ‘팔러 가는 당나귀’의 아버지는 대표적인 팔랑귀다. 주막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 정자의 노인들, 아낙네들, 우물가 처녀들, 행인 등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말을 듣게 된 아버지의 팔랑귀는 결국 당나귀를 물에 떠내려 보내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길가에 집 못 짓는다’는 속담은 줏대가 없는 사람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화엄경〉에서 선지식을 찾아가는 선재 동자와는 달리 남의 말만 듣고 움직이는 줏대 없고 대책 없이 행동하는 이를 이르기도 한다. ‘주변머리가 없다’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이 말은 소통성과 융통성이 없어 어떤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답답한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당나귀 귀’다. ‘여이설화(驢耳說話)’로 알려진 이야기로, 신라 48대 왕인 경문왕이 임금 자리에 오른 뒤에 귀가 나귀의 귀처럼 커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의 본질은 ‘청지이심’(聽之以心=마음으로 듣는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진심을 이해하기 위해 경청함을 이르는 말)에 있다.

사람의 조직사회로 비유해 보자. 예수는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갈 때 굳이 노새를 타고 입성했다. 성경에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가랴 9:9)라는 기록이 있다. 이 말뜻의 본질은 공의(公義), 구원(救援), 겸손(謙遜) 등 셋에 또 하나 더해 ‘나귀의 큰 귀’ 즉 경청(傾聽)을 말하고 있다. 예수가 일부러 귀가 큰 노새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간 것은 민중의 소리를 듣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버지는 필자가 어릴 때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남의 말을 옮기는 일로 싸우는 필자를 앉혀놓고는 “사나(사내)가 매사에 진득해야지, 가벼운 팔랑귀로 앞으로 큰일 하겠나(=남자가 모든 일을 처리할 때 신중해야지 남의 소리에 가볍게 영향을 받으면 어른이 돼서 무슨 큰일을 추진하겠나)?”라고 타일러 주셨다.

‘흙이 많으면 부처상이 커진다’라는 말이 있다. 리더는 공의(公義)와 구제(救濟) 그리고 겸손(謙遜)에다 당나귀의 큰 귀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동민, 구민, 시민, 국민은 그를 선택하려 할 것이다. 새해에 단 한 가지 실천의 목표를 정하라고 한다면, 자기의 말보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당나귀 귀’로 경청(傾聽)을 실천하라고 권하고 싶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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