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곳곳에 얽힌 호랑이 이야기
울산 곳곳에 얽힌 호랑이 이야기
  • 김보은
  • 승인 2022.01.0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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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북면 능산리 열녀 정씨 시묘살이 등 열녀담 자주 등장
인간에게 덕을 베푸는 존재·신격화된 존재로도 그려져
임인년은 흑색을 나타내는 ‘임(壬)’과 호랑이에 뜻하는 ‘인(寅)’이 더해진 검은 호랑이, 즉 흑호(黑虎)의 해다.

호랑이는 무섭고 사나운 존재로 때론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권위와 용맹의 상징으로 우리 역사 속에 깃들어 있다.

울산에서는 열녀담에 자주 호랑이가 등장한다. 울주군 상북면 능산리의 ‘열녀 정씨와 호랑이의 시묘살이’,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의 ‘호식당한 시체를 찾아 준 소금장수’ 등이 있다.

‘열녀 정씨와 호랑이의 시묘살이’는 남편의 시묘살이 중인 정씨 부인의 곁을 호랑이가 지켜주며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다.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녀 동래 정씨(1387~1415) 정려각,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김해 김씨(1693~1718) 열녀각과 관련해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열녀담이 전해진다.

반면, ‘호식당한 시체를 찾아 준 소금장수’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남편의 시신을 지키려고 소금장수의 도움을 받아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으로 앞선 열녀담의 호랑이의 모습과 상반된다.

이같이 일반적으로 설화 속 호랑이는 ‘호환(虎患)’이라고 해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로도 그려지지만 인간에게 덕을 베푸는 존재로도 묘사된다.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하작마을에 있는 서남웅덩이 위쪽 골짜기를 옛날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해 ‘범골’ 또는 ‘버무독골’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아낙네들이 범골에서 만난 새끼 호랑이를 손으로 쓰다듬다가 호랑이의 고함 소리에 모두 도망갔는데 그날 밤 호랑이가 버리고 온 나물 바구니와 신발을 마루 아래 갖다 놓았다는 호원설화가 전해진다.

동구 마골산 불당골에는 조선 후기 울산목장의 산행장(山行將) 전후장(1705~1772)의 공적을 기리는 ‘착호비’가 세워져 있다.

산행장은 목장에 소속된 호랑이 전문 사냥꾼이다. 조선시대에는 동구 남목 일대가 군사용 말을 키우는 거대한 국영목장이었는데 호랑이가 말을 잡아먹는 일이 잦았다.

이에 전후장은 1746년(영조 22) 목장에 들어온 호랑이 5마리를 잡아 조정으로부터 ‘절충장군’ 직을 받았고 1757년(영조 33)에도 호랑이를 포획해 가선대부에 올랐다.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석남사에 있는 19세기 불화 ‘석남사 산신도(시 유형문화재)’에는 산신과 함께 호랑이를 신격화된 존재로 다루고 있다.

이 불화는 19세기 후반 경상도에서 활동한 승려 화가인 성규가 1863년 해인사에서 그린 후 석남사로 옮긴 것으로 추정되며 화면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경사진 낮은 암반 위에 신선과 호랑이가 앉아 있다.

이외에도 부모를 살리기 위해 호랑이로 변신했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해 집 뒤 대밭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는 울주군 온양읍 동상리 ‘홍 생원네 대밭의 범’과 같은 효자 이야기나 울주군 온양읍에 호랑이에게 억울하게 물려 죽은 딸의 시신을 지킨 부성애가 깃든 ‘호식 당한 이대목 딸’ 이야기가 울산에서 전해진다.

울산의 지명 가운데는 마을 동쪽에 호랑이 모양을 한 봉우리가 있고 이곳을 흐르는 시내가 있는 마을이라 이름 붙인 ‘호계동(虎溪洞)’이 호랑이와 연관된 지명이다.

김보은 기자·자료출처=울산역사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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