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생기부 쓰는 중입니다
12월, 생기부 쓰는 중입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12.29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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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화면의 커서만 깜빡이고 있다. 몇 줄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무슨 말을 써야 할까?’ 아이들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를 쓰면서 하게 되는 고민이다.

학교의 12월은 생기부의 달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12월이 되면 학생들의 생기부를 작성한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초·중등교육법은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평가해 학생지도 및 상급학교 학생 선발에 활용할 자료를 작성·관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 자료가 바로 생기부다. 쉽게 말해 생기부는 아이들이 평소에 치르는 시험과 수행평가 그리고 점수로는 표시되지 않는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는 자료다.

선생님들이 생기부를 쓰는 영역은 크게 세 가지 정도다.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하 ‘교과 세특’),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하 ‘행발’)이다. 우선 교과 세특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배운 정도와 태도, 참여도 등을 교과 선생님들이 입력하는 부분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자율활동, 진로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의 네 가지 영역에 대한 특기사항을 입력하는데 주로 담임선생님들이 한다. 행발은 담임선생님들이 행동발달 사항을 포함한 각 항목에 기록된 자료를 종합해 학생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으로 작성하는 부분이다.

아이들에 대한 내용을 문장으로 쓰는 것도 쉽지 않지만 쓰는 방법도 나름 까다롭다. 생기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 안내」라는 250페이지가량의 제법 두툼한 작성 매뉴얼이 있을 정도다. 기재요령에 따르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장점과 단점을 기록된 사실에 근거해 입력하게 된다. 그리고 단점을 입력할 때는 변화 가능성을 함께 입력해야 한다. 사실 선생님들은 웬만하면 아이들의 좋은 점을 써주기 마련이다.

가끔 그게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대체로 학년 말이 되면 아이들의 나쁜 점도 보이지만 좋은 점도 보이는데 그게 잘 안될 때가 그런 때다. 도저히 긍정적인 점을 찾지 못하면 작년 담임선생님은 뭐라고 쓰셨는지 한 번 확인해본다. 그리고 그 내용을 참고해서 아이의 좋은 면을 보기 위해 노력해본다. 그것조차 쉽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조금 느끼게 된다.

올해는 담임이 아니라서 생기부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1학년 수업을 맡게 되어 수업했던 모든 아이들의 교과 세특을 기재해줘야 한다. 자유학년제는 점수로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과 세특을 쓰려면 아이들이 작성한 수업활동 결과물을 참고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행발과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구겨진 주제탐구보고서를 펼쳐보면 내용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보고서를 쓴 학생의 이름을 확인해본다. 어떤 아이인지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큰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수업 진행을 방해하던 모습,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같은 모둠 친구와 딴짓을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이의 온갖 모습이 머릿속을 스친다. 또다시 화면의 커서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며칠 전 같은 교무실의 선생님들과 생기부를 쓰면서 거짓말쟁이가 되어가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계시던 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래도 아이들은 결국 뭐가 되어도 될 인물이야. 그렇게 생각해야 돼.”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여쭤보니 지금은 선생님 말도 안 듣고 저렇게 커서 뭐가 될까 싶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다 제 나름의 뭔가를 이뤄낸다고,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날 수업에 들어갔는데 여전히 엉뚱한 소리를 크게 내며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가 있었다. 짜증이 치밀어오르려는 순간, ‘그래. 너도 결국 뭐가 되도 될 인물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흰소리가 좀 귀여워 보였다.

사실 말썽꾸러기 아이들도 자기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지낼 때,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 같은 것을 할 때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다른 사람 같다. 저런 면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수업 시간에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을 담아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뭐가 되도 될 인물이야.’ 오늘도 하나를 배웠다.

정창규 고헌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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