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종정 스님과의 대화
15대 종정 스님과의 대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12.2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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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날 다시 찾아뵀으니 근 반년만의 재회인 셈이다. 그사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가장 뚜렷한 건 위상(位相)의 변화였다. 사부대중의 호칭도 ‘대종사(大宗師)’에서 ‘종정(宗正)’으로 바뀌어 있었다. 언뜻 ‘종정’의 사전 풀이를 들여다보았다. ‘우리나라 불교계의 최고 지도자. 특히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종단의 신성함을 상징하는 직위를 말한다. 종통(宗統)을 계승하며 불교계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다.’

지난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으로 추대된 영축총림 통도사의 방장 성파(性坡)스님. 그 어른을 ‘토굴’에서 뵙기에 앞서 서운암 경내 장경각 앞마당을 오랜만에 살폈다. 눈을 남쪽으로 돌리는 순간 널따란 자갈마당 한 귀퉁이에서 강렬한 은빛이 시신경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 빛줄기는 한때 ‘인공연못’으로도 불렸던 수중(水中)전시용 수조(水槽) 2곳의 수면에서 새 나온 반사광(反射光)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동안 앞마당 한구석 ‘전시관’ 옆으로 밀려나 있는 줄 알았던 성파스님의 ‘나전 옻칠’ 작품 두 점이 전보다 더 생생하고 찬란하게 되살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제는 울산의 국보(國寶)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암각화’.

오후 2시 토굴에서 합류한 부·울·경 손님 열두 명이 일제히 큰스님에게 절을 올린 뒤 다담(茶談)을 이어갔다. 차례를 기다리던 필자도 예를 갖춰 말문을 열었다. “장경각 앞 큰스님의 옻칠 작품 두 점, 다시 광채가 빛나던데 어찌 된 연유이신지?” 큰스님이 말을 받았다. “지난주에 다시 선보인 거야. 처음에는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구멍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잘못을 바로잡아 놓은 거지.”

그러고 보니 북쪽 천전리암각화 전시용 수조 한쪽 모서리를 차지하고 있던 맷돌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그 이유가 바로 귀에 들어왔다. 말씀이 이어졌다. “물이 고이기만 하다 보니 지난 여름에는 그 땡볕에 수조의 물이 쩔쩔 끓는 거야.” 두 옻칠 작품을 지탱해주던 접착제가 그때 녹으면서 물이 스며들어 작품을 버려놓았다는 말씀 같았다.

달라진 게 또 있었다. 두 작품의 안내판을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작고 아담하게 새로 꾸며 놓았던 것. ‘암각화’ 말끝에 큰스님이 한 말씀 하셨다. 방 안에 둘러앉아 있던 방문객들의 귀가 큰스님 쪽으로 향했다. “다들 ‘천전리각석’이라 하던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고 ‘암각화(岩刻畵)’라고 불러야 해. 요새 돌 새기는 사람들, 하나같이 각석(刻石)이라 부르지 않나?” 그 뒷말은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너도나도 각석이라고 부르면 국보의 가치가 떨어지잖아.’ 내친김에 필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암각화’ 대신 순우리말 ‘바위그림’은 어떨는지요?”

큰스님이 3년이나 공들여 만든 옻칠 작품을 울산시청 본관 벽면에 걸어둘 기회를 주실 수 있는지, 끝으로 여쭈었다. 큰스님의 훌륭한 작품을 시민들이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하는 울산시 관계자의 염원 어린 부탁도 있고 해서였다. 큰스님의 말씀은 스스럼이 없었다. “그렇잖아도 며칠 전 종정 추대 소식을 들은 송철호 시장이 인사하러 와서 그 비슷한 말을 하던데, 그때는 내가 답을 안 했지.”

그러면서 큰스님은 여운을 남겼다. 새 작품을 만들어 기증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겠다는 말씀이었다. 제작 기간은 바짝 앞당기더라도 1년은 더 걸릴 거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울산의 두 바위그림을 주제로 삼은 새 옻칠 작품이 완성돼 시청 본관 1층 로비의 벽면에 걸리게 된다면…. 울산시민들은 어쩌면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쁨에 큰스님을 향해 두 손 모아 합장(合掌)하면서 반기려 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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