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맨틱 홀리데이’-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 이상길
  • 승인 2021.12.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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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의 한 장면.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의 한 장면.

 

<로맨틱 홀리데이>에서 미국 LA에 살면서 잘 나가는 영화예고편 제작회사 사장인 아만다(카메론 디아즈)는 아름다운 외모에 넘쳐나는 돈, 화려한 인맥 등 누가 봐도 성공한 여자다. 부족할 것 없는 그녀에게도 골칫거리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마음처럼 되지 않는 연애문제.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도 같은 회사 어린 여직원과 바람이 난 걸 얼마 전 알게 됐다. 그녀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끔찍하기만 하다.

한편 영국 전원의 예쁜 오두막집에 살면서 인기 웨딩 칼럼을 연재하는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는 순수하고 착한 심성을 지닌 아름다운 여자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와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여자와의 약혼을 발표한다. 시쳇말로 그 동안 양다리를 걸쳤던 것.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렇게 아만다와 아이리스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됐고, 둘 다 자신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홈 익스체인지 휴가’를 결심하게 된다. 이게 뭐냐면 휴가 기간 동안 서로 집을 바꿔 지내는 것으로 6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두 여자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뒤 결국 홈 익스체인지를 통해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게 된다. 무려 2주 동안이나.

먼저 LA에서 영국으로 건너 온 아만다는 오두막집에서 오직 혼자만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상처를 잊기 위해. 하지만 자주 그렇듯 세상일은 계획대로 잘 안 되기 마련. 야심한 밤에 한 남자가 문을 두드리는데 다름 아닌 아이리스의 친오빠 그레엄(쥬드로)였다. 술에 취한 날이면 굳이 차를 몰지 않고 가까운 여동생 집에서 신세를 져왔던 그는 그날도 평소대로 동생 오두막집 문을 두드렸던 것. 근데 동생이 아닌 매력적인 아만다(카메론 디아즈)가 불쑥 튀어 나왔다. 아니 놀란 건 오히려 아만다 쪽이었다. 남자한테 배신당해 아파죽겠는데 너무도 매력적인 영국 남자가 서 있었던 것. 그것도 전성기 시절의 ‘쥬드로’라니.

반면 LA로 간 아이리스는 아만다의 친구이자 영화음악 작곡가인 마일스(잭 블랙)를 만난다. 비록 미남은 아니지만 푸근하고 따뜻한 매력을 지닌 마일스는 특히 섬세한 감수성이 자신과 몹시도 닮았다. 해서 둘은 주로 일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가까워지게 된다.

세상엔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 사실 어렸을 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무런 조건 없이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했더랬다. 크리스마스는 곧 겨울방학의 시작이었고, 그 들뜬 기분을 표현하기 위해 동네 야산에서 작은 소나무 가지를 꺾어 베지밀 병에 꽂은 뒤 허름한 트리를 만들어 방안을 장식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크리스마스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사랑을 알고 난 후부터였던 것 같다. 사랑을 알고 나니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싫어지기 시작했던 것. 그러니까 혼자일 때 겪는 크리스마스는 외로움을 키우는 장애물로 전락해버리더라. 사랑이 뭔지.

그랬거나 말거나 나 같은 영화광들은 크리스마스시즌이 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어울리는 영화를 한두 편 꼭 찾아서 보게 된다. 어릴 적 아무 이유 없이 행복했던 그 기분이 잠시나마 느껴져서. 그래서 보게 된 <로맨틱 홀리데이>는 역시나 잠시 동안 그 기분을 충분히 느끼게 해줬다. 물론 두 커플의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게 컸겠지. 아니 꼭 그렇진 않다.

사실 크리스마스에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크리스마스엔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른이 되면 행복에 조건이 달리기 마련이고, 크리스마스 때 사랑은 가장 강력하고 보편적인 조건인 셈. 허나 사랑은 반드시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이젠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영화가 되어버린 <러브 액츄얼리>도 말하듯 사랑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과 늘 곁에 있는 친구들, 직장 동료들, 옆집 이웃,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늘 함께하는 이름 모를 사람들, 심지어 피부색깔이 다른 이주 근로자들까지.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들 모두 마음속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거다. 그건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해서 이번 크리스마스엔 그들 모두를 사랑해보자. 그러니까 인류애를 한번 가져보자는 말. 또 때가 때인 만큼.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어머. 내가 이런 생각을? 반백살이 코앞이니 철이 좀 드는 건가. 훗.

2006년 12월 14일 개봉. 러닝타임 13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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