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 나이트> 3부작 VS 드라마 <나의 아저씨>-옳고 그름? 아니 빛과 어둠!
영화 <다크 나이트> 3부작 VS 드라마 <나의 아저씨>-옳고 그름? 아니 빛과 어둠!
  • 이상길
  • 승인 2021.12.1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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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인생영화나 인생드라마란 게 있기 마련이다. 나 같은 경우 현재 인생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3부작이고, 인생드라마는 김원석 PD가 연출하고 박해영 작가가 극본을 쓴 <나의 아저씨>다. <다크 나이트>는 벌써 10년 넘게, <나의 아저씨>는 3년 넘게 굳건히 인생작 타이틀을 지키고 있는데 두 작품 모두 수십 번도 넘게 본 탓에 좋아하는 장면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다. 그렇더라. 나이가 드니까 이미 봤던 명작 다시 보는 게 마음 편하고 더 좋더라.

헌데 두 인생작을 번갈아가며 수도 없이 보다 보니 제목까지 다섯 글자로 같은, 영화 <다크 나이트>와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같은 철학을 갖고 있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됐다. ‘엥? 하나는 DC의 슈퍼히어로 가운데 한 명인 배트맨이 악당을 소탕하는 이야기이고, 하나는 한 동네 사는 40대 중반의 가장과 20대 초반의 어린 여자가 서로의 삶에 위로가 되어주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지?’ 방금 이 생각했죠? 하긴, 저도 기가 찹디다. 그렇다. 이쯤에서 실토하면 영화 <다크 나이트> 3부작과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내 사고(思考)의 근간을 흔들어버린 인생작들이다. 해서 이번 주는 조금 특이하게 TV영화소개프로에서 자주 하는 형식으로 두 작품을 비교해보게 됐더랬다. 왜? 재밌을 거 같으니까!

사실 이들 두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일은 선(善)과 악(惡), 혹은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적어도 사람이라면 선을 지향하고 옳은 길로 가야 한다고 굳게 믿었었다. 그 무렵 내 인생영화는 케네디 암살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에 대한 구분 자체가 모호해지면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그 둘에 대한 구분은 그 자체만으로도 피곤한 일이었고, 정말이지 내가 힘들어 죽고 싶을 땐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 따윈 아무 것도 아니더라. 그 때는 그저 내 편 들어주고, 내 손잡아주는 사람이 선이고 옳음이었다. 설령 그 사람이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그랬다.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 이전에 생존이 있었던 거다. 결국 둘에 대한 구분은 인간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일 뿐었던 것. 실제로 대자연과 우주는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을 모른다. 맹수가 사슴을 잔인하게 잡아먹는다고, 혹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인류를 멸종시킨다고 악하거나 그르다고 말할 순 없잖은가.

이런 생각이 들자 도시의 구원자 배트맨은 선, 악당 조커는 악으로 구분해서 봤던 <다크 나이트>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랬다. 온갖 범죄와 부패로 얼룩져 어둠이 자욱이 내려앉은 고담시에 배트맨은 선이 아니라 한줄기 빛이었던 거다. 실제로 배트맨은 악당과 맞서 싸우면서 법을 많이 어겼다. 아니 그 존재 자체가 이미 불법이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이선균)과 지안(이지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다니면서 월 오륙백을 벌지만 회사에선 대학 후배인 대표이사에게 치이고, 집사람(이지아)은 그 대학후배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동훈이나 어려서 부모가 남긴 사채 빚에 평생 쫓겨 다니며 그 빚을 갚기 위해 뼈가 으스러지게 일만 했던 지안의 삶이나 어둡긴 마찬가지.

그런 지안은 돈을 벌기 위해 동훈이 다니는 건설회사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게 됐고, 사채업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동훈을 회사에서 쫓아내려는 대표이사 준영(김영민)을 도와 한 몫 챙기려 한다.

해서 동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지안은 그를 도청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동훈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리면서 위로까지 받게 된다. 고등학생 때 할머니를 패는 사채업자의 등을 칼로 찔러 살인자가 된 지안의 과거를 알게 된 동훈은 그 사채업자 아들놈(장기용)을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나 같아도 죽여. 내 식구 패는 새끼들은 다 죽여.” 그걸 도청하던 지안은 처음으로 자신을 이해해준 동훈으로 인해 오열한다. 그렇게 동훈은 한 줄기 빛이었다.

비록 살인전과가 있고, 자신을 도청했지만 동훈 역시 지안으로 인해 어둡고 무거운 삶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그 위로는 지안의 이 한 마디에 다 담겨 있었다. “파이팅”. 해서 그는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형제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해라.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져.” 지안 역시 한 줄기 빛이었던 거다.

어른이 되면 어차피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은 ‘이익’이 판가름하기 마련. 이제 왜 <다크 나이트>와 <나의 아저씨>가 같은 철학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건지 공감이 좀 되시나요? 그렇다 해도 개인적으로 세상엔 유일한 선(善)이 하나쯤은 존재한다고 본다. 바로 자기희생. 배트맨은 도시를 위해, 동훈과 지안은 서로의 삶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 했다. 그건 흡사 이 우주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내뿜는 초신성(超新星) 같았다.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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