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살고 싶은 곳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살고 싶은 곳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12.05 2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과의 인연은 오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일 년에 한 번, 대추가 익어가는 달 중순쯤이면, 부모님을 따라 병영의 친척 집을 다녀가곤 했다.

아침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에 집을 나서 완행열차를 타고 부전역에 도착했다가 두 시간쯤 기다려 다시 갈아타야 했다.동해남부선 기차를 기다리는 사이 역 부근 육교에서 옥수수 술빵을 사 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노르스름한 색에 강낭콩이 듬성듬성 들어있던 그 빵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비길 데가 없었다.

울산 태화교를 지날 때는 고풍스러운 로얄예식장 건물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병영성 아래 애두름을 지나 친척 집에 도착하면 언제나 배꼽시계가 요란스레 울었다. 점심을 술빵으로 때웠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할머니가 정성껏 장만해 놓으신 음식으로 허기를 때우고 나면 어른들은 으레 한동안 묵혀 둔 이야기보따리를 푸셨다. 나는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그 말을 귀에 담으며 잠에 빠져들곤 했다. 다음날 울산 구경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부모님이 여름지기여서 해가 뜨자마자 바로 집으로 돌아가 농사일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울산이 이렇게 유서 깊고 아름다운 곳인지는 까맣게 몰랐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결혼한 남편이 울산의 기업체에서 일하게 되면서 울산과의 두 번째 인연이 시작되었다. 신혼살림을 차린 전하동의 작은 아파트 앞 빨랫줄에서 오징어를 말리는 풍경이 참 신기했다. 아는 이도 없는 낯선 곳에서 날마다 고향 쪽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을 즈음 마음 따스한 이웃을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 친언니처럼 살갑게 대해 주던 이층집 아주머니였다. 힘들 땐 아기도 업어주고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면 나눠주기도 하는 참 정이 많은 분이었다.

울산은 누가 뭐래도 나의 제2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두 딸을 낳아 길렀고, 인생의 멘토를 만난데다 마음속 깊이 간직해온 꿈도 펼칠 수 있었으니…. 이 모두 주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이 퇴직한 후에도 우리 가족은 계속 이곳에서 살아갈 계획이다. 울산은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손꼽을만한 여행지들이 수두룩하다. 반구대암각화, 대왕암공원, 가지산과 시원한 계곡, 바라보기만 해도 활력이 솟아나는 동해바다, 연어가 돌아오는 태화강 들은 어쩌면 신이 내린 선물인지도 모른다. 울산을 한번 다녀간 지인들은 울산에 반했다는 말을 종종 들려준다.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울산의 인구가 갈수록 줄어든다니 참 안타깝다.

먼 곳을 다녀오는 길에 ‘울산’이라는 이정표만 봐도 안심이 되고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울산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삼십여 년을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일근 시인은 〈울산이라는 말이 별빛처럼 쏟아져 내리네〉라는 시에서 울산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 “울산이라는 말 참 따스한 말/ 멀리 떠났다 돌아올 때/ 버스 안이나 열차 안에서/ 차창에 이마를 대고 중얼거려보는 울산/ 아 울산이라는 말/ 내가 사랑하는 이웃들이/ 나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둥근 하늘 아래/ 둥글게 모여 살며/ 울산이라는 그 말을 만들어 가네/ 울산이라는 말이 손처럼 따뜻하네/ 울산이라는 말이 별빛으로 쏟아져 내리네”

돌아보니 어느새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지구별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다름 아닌 ‘울산’이라고….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