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소나무
붉은 소나무
  • 김준형 기자
  • 승인 2009.05.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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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노래 ‘상록수’의 첫 단락.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특별하다. 이는 ‘애국가’를 비롯한 노랫말과 문학, 회화, 건축, 공예, 민속, 지명 등 각종 분야에서 우리 민족과 얼마나 밀접한지 나타나 있다.

우선 소나무는 절개를 상징한다. 사계절 내내 푸르다. 추위나 눈보라에도 끄떡없이 푸르다. 소나무의 상록은 잎의 수명이 2~3년인데 새잎이 돋아 1년생 잎으로 되면 2년생 잎은 떨어지고 잎이 질 때 안쪽에서 떨어진다. 이것이 소나무를 푸르게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또 소나무는 예부터 해 산 물 돌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과 함께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한다. 임금이 집무를 보던 용상 뒤 병풍에도 십장생이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이 밖에도 소나무는 씩씩함, 깊은 부부애 등 주로 ‘세파(世波)에도 한결같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를 신성한 나무라고 믿었다. 마을을 수호하는 동신목(洞神木)과 산에 있는 산신당(山神堂)의 신목에 소나무가 제일 많은 이유다. 소나무 가지는 제의나 의례 때, 부정을 물리치는 도구로 쓰였다. 동제를 지낼 때나 제사 지내기 여러 날 전에 신당, 제수를 준비하는 도가집, 공동 우물, 마을 어귀 등에 소나무 가지를 꿴 금줄을 쳤다. 밖에서 들어오는 잡귀의 침입과 부정을 막아 제의 공간을 정화 또는 신성화하기 위해서다.

정월 대보름 전후에는 소나무가지를 문에 걸어 잡귀와 부정을 막았고, 동지 때 삼신과 성주에게 빌고 병을 막기 위해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렸다.

과거 한국인들은 태어날 때 솔가지를 끼운 금줄을 매달았으며 죽을 때도 소나무의 칠성판에 누웠다. 소나무보다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닮아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최근 ‘푸르름’ 상징인 소나무는 안타깝게도 더 이상 푸르지 않다. 솔껍질깍지벌레와 재선충병의 공격으로 빨갛게 말라죽어가고 있다. 해안가 숲은 마치 가을 단풍이 든 것 같은 모습이다. 이는 영양결핍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가뭄까지 겹쳐 면역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록수’의 노랫말처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푸르다’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제는 돌봐야 한다. 행정청의 노력이 우선이지만 시민들도 심각성을 보고 직접 참여하자.

/ 김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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