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방식
이별의 방식
  • 이상문 기자
  • 승인 2009.05.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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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떠나면 /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이별’이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떠나는 사람과 남겨지는 사람 사이에는 이별이라는 통과의례가 존재하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평생을 함께할 것 같던 연인과의 이별은 물론이고, 다정한 벗들과, 고운 이웃과도 무시로 이별한다. 그토록 많은 이별 가운데 가장 혹독한 것은 사별(死別)이다. 이승과 저승으로 갈린 세상으로 떨어져야 하고 다시는 상대의 향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으로 슬퍼한다. 우리 민족은 임금님과 부모님의 죽음은 천붕(天崩)이라 하여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애석해 했다.

불가에서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去者必返]’고 설파한 말은 만고의 진리지만, 이별 앞에서 의연한 사람은 드물었다. 우리는 지난 주, 현실 공간 속에 존재했던 한 사람이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며 역사 속으로 떠나는 모습을 우울하고 애통하게 지켜봤다. 대한민국 인구의 10%가 분향소에서 국화꽃을 바쳤고, 국민장이 치러지던 날 1%는 서울의 거리가 노란색 물결이 넘치도록 만들었다. 나라 전체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애통함을 뒤로 하고 고인은 한 줌의 재로 남았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고인은 우리에게 그 어떤 징후도 보여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했었다. 이제 남겨진 것은 고인이 남긴 추억과, 국민들에게 온 몸을 날리면서 보여준 교훈뿐이다. 또, 이별을 하고 난 뒤의 감정 수습이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애도정국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방향잡기가 어수선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장례위원회나 정부는 ‘화해와 통합’을 요구한다. 진보진영에서는 ‘책임 질 사람은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고인이 유서에서 남긴 짧지만 완강했던 당부를 떠올려야 한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고인은 자신의 죽음이 몰고 올지도 모르는 ‘갈등과 분열’을 우려했기 때문에 이 말을 남겼을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갈등과 분열은 이롭지 못하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따져볼 때 책임규명은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할지 모르지만, 정략적 이용은 반듯하지 못하다. 그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는 아직 지지부진이고 북한의 도발은 서슴없다. 대한민국의 상황이 이처럼 곤고했을 때도 없었던 듯싶은데 애도정국에 파묻혀 위기상황이 희석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일상의 평정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시간을 흘려보낸다면 이 위기를 쓸어 담을 방법이 없다.

울산은 당장 노사화합을 통한 경제회생에 모든 주체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울산의 경제가 흔들리면 대한민국 경제는 뿌리가 들썩거린다. 다행히 위기상황을 직시한 노사양측이 과거의 치열했던 대립과는 양상이 다르게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하니 안도가 되긴 한다. 하지만 불씨는 아직 살아있다. 애도정국이 지나고 난 직후인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아무도 모른다. 고인이 던진 화합의 갈망을 누가 먼저 솔선수범할 것인지 의문이지만, 노사양측이 정치적 수사만 날리지 말고 진정으로 화합의 길로 나아가기를 시민 모두가 바랄 것이다. 이타행(利他行)을 떠올린다면 해답은 나온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자.

떠나간 사람이 내 가슴에 남는다는 이성복 시인의 이별 방식을 곰곰이 음미해 보자. 고인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온갖 고정관념과 타성에 젖은 나를 온전히 비우고 떠난 사람의 목소리를 새겨 담는 새로운 이별의 방식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 이상문 편집국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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