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을 넘어 삶으로
앎을 넘어 삶으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12.0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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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 급식실로 가는 복도에 뭔가 잔뜩 붙어 있었다. ‘올림픽의 꽃, 경륜. 자전거 선수를 면담하다.’, ‘불과 싸우는 영웅, 소방관’, ‘추진그릴스와 함께하는 간호사 알아보기’…. 각종 직업인을 인터뷰하고 발표 자료로 정리한 것들이었다. 그 순간 아침에 왔던 메시지가 생각났다. 얼마 전 아이들과 했던 직업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국어 선생님의 메시지였다.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의 ‘면담하기’ 단원에서 배운 내용을 실천하고 발표한 것들을 붙여놓은 것이었다.

최근 강조되고 있는 미래 교육에 대한 담론들은 교육이 지식 중심, 강의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 역량 중심으로 재편되고 삶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교과 중심, 지식 중심의 전통적 학교 교육으로는 변화하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실천이나 활동, 실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강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프로젝트 수업이다. 이러한 미래 교육 담론을 반영해 울산교육청에서는 올해부터 ‘미래 역량 강화 학생중심수업 혁신’의 일환으로 ‘1학교 1프로젝트 수업’을 권장하고 있다. 프로젝트 수업은 쉽게 말해 실제 삶의 문제를 협력적으로 탐구하고 실천하는 수업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도덕 교사다. 도덕 교과에서는 학생들이 도덕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배우는 지식과 탐구만으로 일상 속 도덕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실제로 도덕적 문제를 탐구하고,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고, 해결 방안을 실천하는 경험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세계시민 프로젝트 수업 <나는 14살, 세계시민입니다>를 준비했다.

수업을 설계하면서 학생들에게 3가지를 보장해주려고 노력했다. 첫째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프로젝트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수업과 관련, 학생들의 면담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학생들은 프로젝트 수업이 활성화되려면 주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수준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내용이 성취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완전한 주제 선택권을 보장해주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세계시민 단원을 선택했다. 세계시민 단원의 목표는 지구촌의 다양한 도덕적 문제들을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천(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지구촌의 다양한 문제들 가운데 더 흥미 있는 주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는 실제 삶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들을 익히는 것이었다. 휴대전화는 많이 쓰면서도 휴대전화나 스마트 기기 사용법은 잘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주제를 검색하는 방법, 검색된 자료가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고 믿을 수 있는 내용인지 평가하는 방법, 프레젠테이션 도구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과 같이 실제 삶에서 필요한 기술들을 익힐 수 있는 과정들을 반영했다.

마지막으로 실천 방법을 자율적·현실적으로 하도록 했다. 사실 학교에서 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는 산출물의 유형을 정해주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학생들이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는지 배울 수도 있고, 수업 시간에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자신들이 선택하고 수행한 구체적인 실천이 실제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다.

한 달이 넘게 아이들과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면서 많은 고민과 후회를 했다. 그만큼 많은 것들을 배웠다. 아이들도 그랬다. 아이들은 SNS로 주제와 관련된 게시물을 만들어 올리고, 직접 후원하고, 물건을 구입하고,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 실태를 알리고, 설문도 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실천과 그 의미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전에는 관심이 없던 세계의 여러 가지 문제를 알게 되었고, 세계시민으로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행동을 실천했다.

이번 프로젝트 수업으로 아이들이 세계시민으로서 훌륭하게 성장하고 실천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수업을 통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계의 도덕적 문제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거기에 마음을 쓰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번 수업은 괜찮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정창규 울산 고헌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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