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양, 늑대, 양을 지키는 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양, 늑대, 양을 지키는 개
  • 이상길
  • 승인 2021.11.2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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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한 장면.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한 장면.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뒤 아버지가 식탁에 함께 앉은 어린 두 아들에게 이런 설교를 한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양, 늑대, 양을 지키는 양치기 개. 악의 존재를 믿지 않아서 어둠이 내렸을 때 속절없이 당하는 사람들, 그들이 양이지. 그리고 힘으로 자기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사람들, 그들은 늑대다. 마지막으로 신의 축복을 받고, 약한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 그들은 바로 양치기 개와 같다. 난 내 자식이 양이나 늑대가 되는 꼴은 못 본다. 우리 편을 지켜줘야지.”

그런데 어린 두 아들 중 형은 나중에 커서 이라크 전쟁의 영웅이 된 ‘크리스 카일’이었다. 그렇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크리스 카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크리스 카일이 누구냐면 이라크 전쟁에서 활약한 미국 최고의 저격수로 4차에 걸친 파병을 통해 그가 사살한 적만 공식적으로 160명에 달한다. 비공식적으로는 무려 255명이나 된다. 원래는 로데오 선수가 되려했던 그는 9.11테러가 발생하자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우리 편을 지켜주기 위해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에 입대해 저격수가 된다.

이라크전에서 그의 역할이 얼마나 컸냐면 그는 늘 높은 곳에 자리를 잡은 뒤 스나이퍼건에 달린 망원경을 통해 적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다 아군을 공격하려는 적이 나타나면 사전에 사살해버렸다. 그 중에는 아군을 향해 몰래 폭탄을 던지려는 이라크 여자와 그의 어린 아들도 있었다. 그렇게 그가 구한 아군 병사들만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덕에 그는 동료, 아니 미군 전체에서 ‘전설’로 불리게 됐다. 분명 그 모습은 아버지가 원했던 양치기 개였다. 그래 맞다. 개였던 거다.

미국 영화인들 가운데 극우세력을 대표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솔직히 보는 내내 의외였다. 하긴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백(白)인 줄 알았는데 흑(黑)이 되고, 흑(黑)인 줄 알았는데 백(白)이 되기도 하더라.

그랬거나 말거나 <아메리칸 스나이퍼>에는 주인공 크리스 카일에 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지독한 연민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연민이란 미국인으로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사실 크리스 카일이 같은 편을 지켜준 개였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과연 양을 지키려 했던 양치기 개였을까? 아시다시피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은 대량 살상이 가능한 생화학 무기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9.11테러를 일으킨 건 정작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사마 빈 라덴’ 일당이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찾겠다는 생화학 무기는 끝내 없었고, 결국 무고한 이라크인들만 수도 없이 죽어나갔다. 그 중에는 크리스 카일에 의해 사살된 엄마와 그의 어린 아들도 있었다.

물론 반격한 이라크인들에 의해 미군도 많이 죽었다. 그래서였을까?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한 뒤인 2008년 12월 14일 이라크를 찾았다가 기자회견장에서 한 젊은 이라크 기자로부터 욕과 함께 신발투척 세례를 받게 된다.

그렇게 먼저 침략한 건 미국이었고, 크리스 카일은 양이 아닌 늑대를 지켜줬던 늑대개였던 거다. 그러니까 그는 나쁜 권력의 주구였고, 그것에 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연민이 영화 속에 가득하다. 그 연민은 후반부에 이르러 앞마당에서 자신의 아들과 노는 개의 목을 졸라 죽이려 하는 크리스 카일의 모습에서 극에 달한다. 그랬다. 자신만 인정하지 않았을 뿐, 그는 침략전쟁을 통해 점점 미쳐갔다.

세상엔 양과 늑대는 늘 넘쳐나지만 양을 지키는 양치기 개는 잘 없다. 사람들이 슈퍼히어로 무비에 열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배트맨을 제일 좋아하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그립다.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지구를 침략한 악당 타노스(조슈 브롤린)는 결국 우주만물의 근원이 되는 인피니티 스톤 6개를 다시 손에 넣게 되고, 핑거스냅(엄지와 중지로 딱소리를 내는 것)을 통해 우주를 파괴한 뒤 재창조하려 든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필연적 존재다.” 웃기고 있네.

그런 그에 맞서 아이언맨은 찰나의 기지를 발휘해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빼앗은 뒤 스스로 핑거스냅을 통해 늑대들을 몰살하는 소원을 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I...A m...I ron Man(난 아이언맨이다)” 완전 멋져. 에잇! 오늘 밤엔 맥주 한 잔 하면서 <어벤져스:엔드게임>이나 한 번 더 봐야겠다. 2015년 1월 14일 개봉. 러닝타임 132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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