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눈물
아내의 눈물
  • 이상문 기자
  • 승인 2009.05.2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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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장이 치러지는 날이다. 장지에 유골이 묻히고 나면 영면(永眠)한다. 그이는 잠들겠지만 세상에 던져둔 화두는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국민들은 저마다 그이가 던진 화두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 생전에 그이가 그토록 이루려 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불과 백 여일 전에 국민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냈고, 오늘 또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을 떠나보낸다. 국가적으로 봐서도 올해는 애통하기 그지없는 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우리에게 준 과제는 사자후(獅子吼)처럼 명료하고 준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이가 죽음을 선택하게 된 심경과 그 상황까지 몰고 간 저간의 사정을 다시 꺼내놓고 생각하려니 머릿속이 난마처럼 복잡하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사회적 파장을 예상할라치면 그것보다 더 혼란스럽다.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고, 정부나 진보진영이 대국적 차원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것이라는 상상은 유아적이다. 국민들 모두가 걱정하는 정국의 향방은 우선적으로 청와대의 태도에 있을 듯하다. 진보진영은 청와대의 액션을 지켜본 후 진로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조문 정국과 북핵 정국, 두 가지 ‘메가톤급 이슈’가 엎치고 겹쳐 청와대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즉각 응전으로 정부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전격 참여를 결정했지만 북한이 이 같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군사적 도발로 간주하고 있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청와대는 이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조문 정국에 대한 부담감이 훨씬 큰 것 같다. 봉하마을 조문객이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으니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 열기에 촉각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민심은 급랭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27.4%)이기 보다 부정적인 평가(60.6%)가 훨씬 많았다. 한 달 전의 같은 조사에 비해 긍정적인 평가가 5.3%나 낮아졌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도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 주에 비해 3.5% 떨어진 23.2%로, 지난 1월9일(22.5%)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당장의 지지도 하락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이후의 민심이 어떻게 변할지 종잡을 수 없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청와대나 봉하마을 빈소 측이나 조문 정국에 대한 언급은 일체 삼가고 있다. 사려 깊은 이들은 근심어린 발언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고민이 없을 리 없다. “국정지지도는 떨어질 수도 있고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라 하면서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움직이기 시작한 민심이 어떤 모습을 띠는가 하는 문제는 향후 국정에 큰 영향을 줄 것은 명백한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경제 살리기를 위한 큰 걸음은 계속 걸어가야 할 것”이라며 이 와중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비상경제대책을 주제하는 등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애통한 마음을 달래려는 노력은 미진하기 짝이 없다.

요즘 나의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눈물을 훔친다. 조간신문을 읽다가, 마감뉴스를 시청하다가 넋을 놓고 눈자위를 붉힌다. 작년 말 자기 시어머니의 상중에 눈물이 나지 않아 곤혹스럽다고 속삭이던 아내다. 나의 아내뿐이겠는가? 이 땅의 필부필부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뭔지 살피는 것이 후폭풍을 미연에 막는 최선이라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 이상문 편집국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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