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60년간 눈부신 성장… 울산발전의 동력이 된 얼굴들
[특집]60년간 눈부신 성장… 울산발전의 동력이 된 얼굴들
  • 김원경
  • 승인 2021.11.1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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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센터 60주년… 대한민국 산업화 이끈 K명장 3인방

 

산업 강국, 대한민국은 최근 전 세계인이 즐기고 있는 K팝, K드라마에 앞서 K기술로 세계의 이목을 먼저 집중시켰다. 5대양 6대주를 누리는 선박과 자동차를 비롯해 세계시장을 석권한 석유화학제품들까지 국가 경제발전의 일등공신인 K기술. 그 중심에는 우리나라 공업화의 상징인 울산과 대한민국 명장들이 있다. 2022년 울산공업센터 60주년을 앞두고 울산의 3대 트로이카 산업인 ‘자동자·조선·석유화학’의 K명장 3인방을 통해 울산이 산업수도로 우뚝 서기까지의 눈부신 도시 성장기를 들여다본다.
 

황희재 명장,
황희재 명장

◇황희재 명장 1991년 현대차 입사·2015년 화공분야 명장

경남 고성,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난 황희재(56) 명장은 농업고등학교 졸업 후 1991년 현대자동차 도장 공장에 입사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울산에 대기업 일자리가 많다’는 고향 선배의 소개로 울산에 온 만큼, 입사 당시에는 국내경제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자동차 수요 폭증이 공장 증설로 이어졌고, 두세 달 사이 1천명 단위의 인력 충원이 이뤄지기도 했다.

황 명장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입사 동기만 해도 1천명”이라며 “지금은 외부 채용이 거의 없는 상태이지만, 90년대에는 6개월, 1년 단위로 500명 이상의 인력이 수시 모집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5세 입사해 울산4공장에서만 3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이 울산5공장과 아산·전주공장 등 총 3곳의 생산라인이 더 늘어났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자동차는 포터, 그레이스, 스타렉스, 제네시스 쿠페, 스타리아, 펠리세이드. 차종의 변화만큼 도장 기술도 진화 했다.

차량의 부식이나 외부 오염을 막아주는 단순 도장에서 개성이나 이미지를 살리는 수단으로 거듭났는데, 페인트 종류도 유성도료에서 최근 10년간은 기후변화나 환경오염이 사회 이슈인 만큼 수성도료로 추세가 바뀌고 있다. 현재 현대자동차 1·2· 3·5공장에서 생산하는 승용차는 모두 수성도료를 사용하고 있다.

황 명장은 “미래의 도장 기술은 도색이 아닌 전자제품처럼 도금 쪽으로 변화할 것”이라며 “자동차 역사가 우리 보다 오래된 유럽은 이미 도금이 상용화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자동차 기술은 예전 10년 단위의 발전 속도가 2~3년으로 상당히 빨라지고 있다”면서 “자율주행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드론 이용한 교통수단 등 미래 자동차산업 연구가 꽤 진척 된 상황이다. 공업센터 70주년엔 아마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산업도시 울산의 지속 발전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환경 개선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황 명장은 “산업현장 교수로 중소기업 컨설팅을 해보니 근무조건, 환경, 품질, 임금격차 모든 게 열악했다”며 “중소기업의 생산성, 품질이 향상돼야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창출되고, 이는 곧 인구유입으로 도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이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지원을 확대해야 할 때”라고 힘 줘 말했다.

김병희 명장
김병희 명장

◇김병희 명장 1976년 현대重 입사·2011년 기계생산 명장

1976년 현대조선 협력사에 입사했던 김병희(62) 명장은 당시 “별보고 들어가서 별보고 나올 정도”로 일밖에 몰랐다고 한다. 12시간 이상 맞교대 근무하며, 주말도 반장님 결제가 떨어져야 겨우 쉴 정도로 공장은 1년 365일 풀가동했다.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1974년 6월 28일 조선소 준공식(1·2도크 완공)과 1·2호선 명명식이 함께 거행될 만큼 국내 조선업은 도약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 결과 현대중공업은 1983년, 설립 10년 만에 단일 기업으로는 수주량과 건조량 면에서 100년 역사의 일본을 추월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병희 명장은 “아직도 1도크를 보면 당시 의장생산부 현장에서 지켜본 2호선 ‘애틀랜틱 배러니스’호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당시 추운 바닷바람에 제대로 된 작업복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모두 열심히 달려온 결과 10년 만에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한반 인원이 20명 내외라면 70년대에는 88명일 정도로 조직이 비대했다”면서 “전국 곳곳에서 모인 별별 사람들이 많았는데, 깡촌에서 온 한 직원은 ‘그라인더돌(연마석)’ 가져오라 하니 밖에서 큰 돌을 주워와 크게 웃은 일도 있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2019년 의장생산부 기술개발팀장으로 정년을 맞은 그는 회사의 요청으로 현재는 동반성장기술부에서 기술 전수에 매진하고 있다. 기능 인재 육성에 어려움을 겪는 협력업체를 직접 찾아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술 자문역할 이다.

김 명장은 “지금은 중소기업 운영자가 애국자라고 할 만큼 인근 부산, 경주, 양산, 김해 등을 이들이 다 먹여 살리고 있다”면서 “울산의 조선업, 자동차산업이 멈추면 영남일대는 올 스톱된다. 올해부터 수주가 늘면서 협력사도 일감은 있지만 52시간제, 코로나로 인한 외국인 근로자 입국제한으로 인력난, 인건비·자재비 급증으로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울산공업단지가 들어서고 오늘이 있기까지 허허벌판에서 먹거리를 만들어낸 선배들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피·땀 흘리면서 일하다가 돌아가신 산업 전사들이 상당히 많다. 추풍령휴게소 한편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희생자의 위령탑이 세워진 것처럼 울산도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여유를 이제는 가져도 되지 않나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차동조 명장
차동조 명장

◇차동조 명장 1970년 효성그룹 입사·2000년 섬유기계 명장

1970년 효성 울산공장(옛 동양나일론)에 입사했던 차동조(76) 명장에게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은 더욱 뜻 깊다. 국가경제 재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1962년 2월 3일 울산군 대현면 매암리 납도마을 언덕. 당시 학생 신분으로 동원된 차 명장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역사의 현장을 함께 했는데, 8년 뒤 그 자리에 들어선 효성 울산공장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차동조 명장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복입고 헬리콥터에 내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예로부터 울산은 복 받은 땅이라 임산·수산·농산 자원이 풍부했는데, 공업센터로 지정되고 그해 시 승격, 1997년 광역시로 승격하며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이어 “공업센터 지정 전 고향 효문동에 포항제철 들어온다는 말도 있었는데 성사되지 못한 건 아쉽다”고도 했다.

당시 울산의 가장 고층 건물은 4층 남구문화원(옛 울산문화원)이고 공장이라고는 설탕공장인 삼양사 한 곳 뿐이었다.

인구 120만에 수출 1천억불 시대를 맞은 지금의 울산은 그의 말대로 그야말로 ‘천지개벽’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이면에는 ‘죽음의 강’ 태화강의 아픔도 있었다.

2000년 퇴직 후 8년간 촉탁직으로 근무한 차 명장은 은퇴 후에는 태화강 정화 활동에 매진했다. 태화강생태 해설사 회장을 2년 역임한 후 매일 태화강에 살았다는 그는 현재 울산생명의 숲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차 명장은 “70~80년대에는 태화강변에 악취로 걸어 다니지도 못할 정도였는데 지금의 태화강 국가정원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면서 “최근 환경이슈로 수소, 풍력발전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데, 효율 면에서는 원자력을 유지하는 게 탄소중립에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도 했다.

이어 경기 침체로 위축된 후배 산업일꾼에게 “현직에 있을 때부터 내 슬로건은 ‘어려운 곳에 아이디어 있다’이다”며 “회사마다 있는 난관점을 돌파하고 파헤치면 새로운 것이 창조된다. 피하지 말고 골몰하라”고 용기를 북돋았다.

끝으로 “단기 일자리가 아닌 고급 일자리가 많이 창출해야 울산이 발전할 수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는 민노총에만 공을 들일 게 아니라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경 기자

1962년 2월 3일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인파. 사진제공=국가기록원
1962년 2월 3일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인파. 사진제공=국가기록원

 

1974년 6월 28일 현대중공업 1, 2호선 명명식.
1974년 6월 28일 현대중공업 1, 2호선 명명식.
1991년 현대자동차 전경.
1991년 현대자동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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