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암각화’는 두개인데 이름은 서너개?
[특집]‘암각화’는 두개인데 이름은 서너개?
  • 김보은
  • 승인 2021.11.1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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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등재에 앞서 짚어보는 뒤섞인 명칭 혼란
세계유산 명칭 변경 이력

“이곳은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 신청서에는 ‘대곡리 암각화’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울산시가 신청한 유산명인 ‘반구대 계곡의 암각화’가 지난 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 대상에 선정되면서 문화관광해설사들은 이같이 명칭을 소개한다. 잠정등재목록에 오른 지 11년 만에 이룬 성과이지만 기존 명칭과 우선등재목록 신청서의 명칭이 달라지면서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다음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발견 50주년을 맞아 명칭 문제에 주목해본다. <편집자 주>

※명칭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울산시 세계유산 우선등재대상 신청명에 따라 국보명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대곡리 암각화’로, 국보명 ‘울주 천전리 각석’은 ‘천전리 암각화’로 통일한다.

◇ ‘반구대 암벽조각’에서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대곡리 암각화는 국보 명칭의 약칭인 ‘반구대 암각화’로 각종 행사에서 자주 사용된다. 그런데 울산시가 민선 7기 들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작업에 속도를 내는 과정에서 2010년 잠정등재목록에 오른 유산명인 ‘대곡천 암각화군’ 대신 ‘반구대 암각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 뒤로 ‘반구대 암각화’라는 명칭이 국보와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유산명으로 뒤섞여 불렸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1983년 발굴조사보고서부터 두 암각화의 국보 지정,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의 첫 단계인 잠정등재목록 선정까지의 과정이 있다.

먼저 동국대학교 박물관이 발간한 발굴조사보고서 ‘반구대 암벽조각(황수영·문명대)’에는 대곡리 암각화를 ‘대곡리 암벽조각’, 천전리 암각화를 ‘천전리 서석의 암벽조각’, 두 암각화를 통틀어 ‘반구대 암벽조각’이라고 제시했다. 대곡리, 천전리와 같은 지명보다 반구대가 넓은 개념이고 채색이 없다는 점에서 그림이 아닌 조각이라고 봤던 것.

반구대는 모양이 거북이가 넙죽 엎드려 있는 것 같아 이름이 붙여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산 끝에 있는 석대(石臺)다. 옛말에 ‘북구남작(北龜南酌·북쪽의 반구대, 남쪽의 작괘천)’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원효대사와 포은 정몽주, 겸재 정선을 비롯한 많은 관리와 선비들의 자취가 있는 서부 울산지역의 명소다.

이후에 이 보고서의 집필자이자 두 암각화의 발견자 중 한 사람인 동국대학교 문명대 명예교수는 학계 대다수의 의견에 따라 암벽조각 대신 암각화를 채택, ‘대곡리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 이들을 하나로 묶어 ‘반구대 암각화’라고 썼다.

두 암각화는 국보로 지정되면서 공식 명칭을 얻게 된다. 1973년 천전리 암각화가 ‘울주 천전리 각석’, 1995년 대곡리 암각화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로 국보가 된다. 이 과정에서 천전리 암각화가 ‘반구대’를 뗀 채 먼저 지정되면서 반구대가 대곡리 암각화만을 뜻하게 됐다. 그 다음, 2010년 1월 두 암각화와 그 일대는 ‘대곡천 암각화군(Daegokcheon Stream Petroglyphs)’이라는 유산명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실측도. 출처=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 학술연구총서 ‘한국의 암각화 2020’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실측도. 출처=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 학술연구총서 ‘한국의 암각화 2020’

 

◇ ‘대곡천’ 일제강점기에 바뀐 이름?

‘대곡천 암각화군’이란 명칭에는 여러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전호태 교수(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장)에 따르면 학계에선 대부분 사용하지 않는 명칭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대곡천’이란 지명이 일제강점기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조선시대 말 제작된 지도에 ‘반구천(盤龜川)’이라고 표시돼 있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10년대 지도를 제작하면서 많은 고유지명을 일본식 한자로 개명했다는 것.

문명대 교수는 “대곡천이란 지명은 일제가 우리 고유 이름을 바꿀 당시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원래 지명은 ‘반계’ 또는 ‘반구’다. 반계는 ‘개울’이라는 뜻이라 엄밀히 말하면 ‘천’이 같이 붙는 것도 중복된 의미”라고 밝혔다.

울산시가 세계유산 우선등재 신청명에서 대곡천을 지운 데는 이러한 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지난 5월 ‘울주 반구천 일원’의 명승 지정 당시 시가 제시한 명칭은 ‘울주 반구대 일원’이었지만 문화재청 조정안에 의해 ‘울주 반구천 일원’으로 바꿔 지정되면서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물론 과거에는 명소나 동네의 이름을 붙이며 강을 짧게 인식했기 때문에 조선 말 대곡천이란 지명도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거나 전국적으로 일제 때 바뀐 지명이나 중국식 지명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 옛 지명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전문가의 견해도 있다.

아울러 두 암각화를 별개의 유적으로 보고 ‘군(群·무리)’으로 묶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19년 발간한 종합조사연구 보고서 ‘대곡천 암각화군’에 따르면 현재 세계유산인 이탈리아 발카모니카 암각화, 포르투갈 코아 계곡의 선사시대 암각화 등은 여러 암각화를 포함하고 있지만 뒤에 ‘군’이 붙지 않는다.

대곡천 유역 항공사진. 사진제공=울산대곡박물관
대곡천 유역 항공사진. 사진제공=울산대곡박물관

◇ 현재는 ‘반구대 계곡의 암각화’

울산시는 2019년 3월 우선등재목록 신청서 작성을 위한 울산박물관 세계유산등재 학술팀을 구성하고 같은 해 12월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당시 신청서에는 대곡리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 반구대 주변의 인문·자연 경관을 포함하는 유산명으로 ‘반구대 암각화’를 제시했다. 반구대가 대표성과 국제적 인지도를 갖췄다는 이유인데 문명대 교수의 견해를 따라간 셈이 됐다.

이 신청서는 그 다음해 2월 문화재위원회 제2차 세계유산분과 위원회 심의에서 세 요소를 묶게 된 총괄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는 등의 지적을 받으며 보류됐다. 하지만 시는 지난해 관련 조례명을 반구대 암각화로 개정한데 이어 올해 공식지원기구를 ‘반구대 암각화’ 세계유산 추진단으로 출범했고, 지난 5일 홈페이지 ‘반구대 암각화’를 개설하며 여전히 두 암각화와 그 일대를 아우르는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에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된 신청서는 유산명이 또 다르다는 것이다. 반구대를 기준으로 남쪽 암면을 ‘대곡리 암각화’, 북쪽 암면을 ‘천전리 암각화’로 구분한 점은 유사하지만 일대를 포함하는 명칭으로 단일 암면 단위가 아닌 ‘반구대 계곡’이란 공간을 제시했다. 신청한 유산명은 ‘반구대 계곡의 암각화(Petroglyphs in the Bangudae Valley)’.

추진단의 김경진 울산암각화박물관장은 “반구대 계곡은 두 암각화와 주변 환경, 지형을 반영한 세계유산적 가치를 잘 드러내 주는 명칭”이라며 “확정된 건 아니다. 유산의 명칭은 등재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떤 명칭이든 하루빨리 정해 울산시민에게 익숙하게 불리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암각화학회 이하우 회장은 “문화재 명칭은 한번 정해지면 바꾸는 게 쉽지 않다. 합당한 명칭을 정해 자꾸 불러줘야 익숙해질 것”이라며 “문화재청과 협의해 정식 명칭을 바로잡으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호태 교수도 “명칭은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기보단 합의가 필요하다. 상설협의체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논의하며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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