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 흙이 된 당신께
한 줌 흙이 된 당신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11.0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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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고 불러보면 입안에서 흙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한쪽 어깨에 삽자루를 메고 바짓가랑이에 이슬을 달고 이 논, 저 논 분주하게 다니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그려집니다.

16년 전 모내기를 끝내고 평소와는 다르게 모판을 차곡차곡 잘 쌓아놓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홀연히 떠나셨지요. 가족들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도 없이….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갔을 때,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지요. 뭐가 그리도 급하셨던가요? 자식들의 간호도 좀 받아보시고, 마음속에 간직했던 못다 한 말도 하시고, 그렇게 천천히 가셔도 될 터인데. 평생 일하느라 손가락 마디까지 비틀어지신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으셔서 그랬는지요?

어머니는 그 후로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얼굴에 피부병이 생겨서 진물이 나고, 구급차의 요란한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드셨다고 합니다. 살아생전 무뚝뚝했던 아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이란 게 참 그런가 봐요. 이따금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은 감당하기 힘드셨겠지요.

제 생애 첫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황소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해 겨울이었어요. 아마 네 살, 아니면 다섯 살쯤 되던 나이였겠지요. 군불 땐 방에서 아버지의 발등에 올라서서 두툼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둥가, 둥가” 리듬을 타며 천천히 방안을 돌았지요.

그때 부엌에서는 “똑딱똑딱” 칼질 소리가 들려왔고, 구수한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문풍지 사이로 솔솔 들어왔어요. 어머니가 둥근 두레 밥상에 밥을 차려오시면 아버지는 무김치에 젓가락을 푹 찍어서 먹는 걸 무척 좋아하셨지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노래도 감정을 넣어서 구성지게 잘 부르셨지요. 특히 “흑산도 아가씨”를 부르시면 사람들이 박수도 많이 보냈지요. 또 동네 사람들의 별명도 그들의 특징에 맞게 참 재미있게 지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버지를 닮아서 이마가 크다고 불을 드러냈던 것, 늦었지만 사과드립니다. 이마가 크면 마음이 넓다고들 하니 그런 사람이 되도록 애써볼게요.

어쩌다가 두 분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어머니 입장만 생각해주고, 어머니 편만 들었던 것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 많이 섭섭해하셨지요? 철없던 제가 보기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일을 너무 많이 하시는 것처럼 보여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작년부터 쪽빛 동해 바다가 보이는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유년 시절엔 공무원이 직업인 아버지를 둔 친구가 참 부러웠는데, 지금은 농부였던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뿌린 대로 거두고 그저 자연에 순응하며 정직하게 살아오셨잖아요.

흙을 만질 때면 가끔 논두렁길을 걸어가던 당신의 뒷모습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아버지. 저는 오늘도 흙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이 고민도 해봅니다.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한 번도 못 했던 말. 이제야 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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