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예방접종
마음의 예방접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10.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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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기억하는 첫 번째 체벌은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무렵 아침 등굣길에는 학원 홍보 광고를 담은 연습장을 나눠주곤 했었다. 연습장을 받아 아침 자습 시간에 숙제를 풀었는데 미리 안 했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3대 맞았던 것 같다. 연습장을 찢어서 제출했던 아이들은 5대를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강렬한 기억이다.

이젠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최근 몇 년간은 그런 일을 못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그렇게 대했다간 큰 문제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인권이 강조되고 학생들의 위상이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제 사회에서, 교실에서 충분히 존중받고 있을까?

학생들도 인권이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아직은 어딘가 부족한 존재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이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미숙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어른들이라고 완벽한 것은 아니다. 과연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어른들보다 열등하고 덜 발달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어른들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필자의 짐작으로는 아이들은 삶의 경험과 같은 것들이 다소 부족할 뿐이다.

아이들을 수업의 동반자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마음을 오랫동안 유지하기는 어렵다. 수업을 하다 보면 얄미운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럴 때는 마음이 많이 흔들리기도 한다. 가끔 수업 시간에 다른 과목 문제집을 풀거나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있다. 문제집을 푸는 것을 지적하고 그만하라고 해도 잠시 후 슬며시 문제집을 꺼내서 풀기도 한다. 그럴 때는 괘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선생님의 그런 마음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고 가속도가 붙으면 제어가 잘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말과 행동을 멈추고 나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번에 교과 모임에서 작가 초청 강연을 한다고 해서 숙제로 책을 받았다. 학생 때도 그랬지만 교사인 지금도 숙제하는 것은 딱히 즐거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몇 장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다 읽게 되었다.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셨던 국어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처음에는 소년원에서 수업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궁금했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과 어떻게 수업을 하셨을까? 사고뭉치 아이들과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선생님의 수업은 즐겁고 차분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진행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선생님의 마음과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로 선생님의 마음이 잠시 슬플 때도 있었고, 필자처럼 아이들에게 괘씸한 마음이 들기도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끝까지 아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필자는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학교의 아이들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각자의 얼음덩이 같은 것이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에서 그런 것들이 고개를 들 때면 아이들과 맞추고 있던 눈높이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어느새 높은 곳에 올라가 아이들을 내려다보려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책들을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다. 아마 이 정도 효과라면 이번 학기까지는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또 얄미운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괘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수도 있겠지만 한동안은 괜찮지 않을까? 학교생활을 잘하려면 이런 예방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아야 할 것 같다.

정창규 고헌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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