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뉴니스’-사랑, 새것에 중독되다
영화 ‘뉴니스’-사랑, 새것에 중독되다
  • 이상길
  • 승인 2021.10.28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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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뉴니스'의 한 장면.
영화 '뉴니스'의 한 장면.

 

<뉴니스>에서 가비(라이아 코스타)가 마틴(니콜라스 홀트)에게 말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 문제는 항상 새로운 걸 좋아한다는 거예요. 항상 새로워야 해요. 뭔가 새로운 게 생기면 깊이 빠져서 몰두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금방 버려요. 쉽게 질리고 지겨워하죠. 관심이 싹 사라져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사실 둘은 방금 스마트폰 데이트앱을 통해 클럽에서 처음 만난 사이다. 가볍게 원나잇을 원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 그 데이트앱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방금 전까지 가비는 이미 다른 남자와 몸을 섞다 만족을 못해 데이트앱을 통해 다시 마틴을 만나게 됐고, 마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웬걸? 그냥 가볍게 즐기려 했는데 서로 대화가 너무 잘 되는 거였다. 느낌도 통하고. 해서 둘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이 그랬던 것처럼 밤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동이 트기 시작해서야 겨우 마틴의 집에서 관계를 갖게 된다. 긴 대화를 통해 영혼의 잠자리부터 가졌던 터라 육체적인 교감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렇게 몇 차례를 더 만난 둘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됐고 결국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참, 마틴은 약사고, 가비는 물리치료사다.

하지만 어쩌나. 그들의 사랑도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망할 놈의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피해갈 순 없었다. 이게 뭐냐면 위치에너지나 운동에너지 등 다른 에너지들은 자유자재로 변환되면서 에너지양도 그대로 보존되는데(에너지 보존 법칙) 열에너지만큼은 오로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는 법칙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뜨거웠던 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식기 마련이고 한번 식어버린 물은 외부에서 열을 가하지 않는 이상은 다시 뜨거워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도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에 불과한 만큼 그건 인간이 하는 사랑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영화상에서도 그토록 뜨거웠던 마틴과 가비였지만 동거를 시작하면서 서서히 식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그들의 사랑은 점점 무겁고 지루해져갔다. 고통만 고통이 아니다. 때론 지루함이나 공허함도 고통이다. 고통이란 건 상대적이니까. 결국 둘 다 새것, 즉 자극을 찾아 다시 밖으로 나가게 된다. 하긴 누구든 행복을 위해 살지 세계평화를 위해 살진 않잖아.

그래도 이번엔 좀 달랐다. 둘 다 진심이었기 때문. 그렇게 각자 밖에서 다른 사람과 자고 온 마틴과 가비는 다음 날 아침 식어버린 자신들의 사랑 앞에서 서로 흐느끼며 방법을 찾기로 한다. 각자 정신과 의사를 만나 솔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그들. 가비가 의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을 사랑해요. 확실히.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마침내 의사가 내린 처방은 서로에게 최대한 솔직하라는 것. 이에 둘은 과거부터 솔직하게 공유한 뒤 앞으로는 ‘열린 연애’를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니까 서로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자는 것까지 서로 허용키로 한 것. 그랬더니 놀랍게도 식은 줄 알았던 둘의 사랑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 현상에 대해 열린 연애에 대한 책을 써 유명해진 작가(에스더 퍼렐)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을 찾는다는 건 당신을 떠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라고. 다만 그녀는 강연장에서 만난 마틴과 가비에게 이런 말을 보탰다. “대신 열린 연애는 경유지여야하지 목적지가 되어선 안돼요.”

그들의 열린 연애에 대해선 가비가 우연히 파티에서 만나 사귀게 된 부유층 중년남자 래리(대니 휴스턴)도 냉소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호화보트에서 마틴과의 열린 연애에 대해 자랑을 하는 가비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얻는 게 뭐지? 내 경험상으론 가끔 어떤 것들은 그냥 모르는 게 최고거든.” 그러자 뭘 위해서냐고 묻는 가비에게 다시 이렇게 말했다. “혼자라는 걸 받아들이는 거지.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어. 혼자라고 느끼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바다를 바라봐.”

현실연애에 대한 명대사들로 가득 찬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대사였다. 그리고는 잔인할 만큼 솔직한 이 영화가 내린 결론인가보다 싶기도 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그때부터 두 번 째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그 장면 이후부터는 이젠 새것이 지루해지기 시작하더라는 것. 그러니까 그들의 열린 연애가 얼마나 가엽고 황폐하며 볼품없는지 느껴지더라. 그리고 그 즈음 이런 대사가 툭 튀어나온다.

둘의 열린 연애를 옆에서 지켜봤던 마틴의 절친 폴(매튜 그레이 구블러)은 가비와의 관계로 괴로워하는 마틴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는 57년을 함께 사셨어. 그 비법을 여쭤봤더니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 고민을 하신 뒤 이렇게 말하시더라. 사랑은 서로 포기하지 않는 거라고.”

그러질 못했던 사람이라 감히 공감할 순 없었지만 느낌은 살짝 있더라. 하긴,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나도 언제부턴가 벌써 10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아바타>시리즈 같은 명작이 아니고서야 신작보다는 <다크 나이트>나 <나의 아저씨>처럼 계속 봐왔던 작품들을 보는 게 더 좋긴 하더라.

2017년 11월 9일 넷플릭스 개봉. 러닝타임 118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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