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에게 보내는 넋두리 글
K형에게 보내는 넋두리 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10.0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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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잘 있었어? 지금 여긴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점심 먹고 골목길 카페에서 카페라떼 한잔 마시고 있어. 시나몬을 조금 쳐서 마시니 좋네. 난 시나몬을 커피에 잘 넣어 먹어. 색소폰 소리도 구수하게 들리고. 기분이 차분해지고 옛날 생각도 아련하네. K형이 보고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라 더욱 그런가 봐. 한가위가 달포 지나고 낙엽도 떨어지니 더욱 그러네.

오늘 아침엔 좀 늦게 일어나 아침 먹고 가까이에 있는 교보문고에 갔었어. 내가 하는 일상의 일에 푹 빠졌지만 화끈하게 뭔가 잘 진척이 되질 않아.

아마 며칠 전부터 탈이 나 그런 거 같아. 오른쪽 등과 옆구리가 아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지 뭐. 병원까지 가서 검사받고 며칠을 보냈어. 근데 명확한 원인을 몰라 지금 용한 의사를 찾아보는 중이야. 그사이 가끔 들르는 한의원에서 가벼운 침을 맞고 좀 안정시키고 있어.

K형! 이렇게 답답할 땐, 마음 전할 곳은 K형밖에 없어. K형한테 이렇게 차분히 이야기하듯 글을 쓰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네! 내 마음을 잘 이해해줘 그런가 봐.

근데 K형! 나 있잖아. 올해 벽두부터 ‘유튜브’ 하고 있어! 다들 보는 유튜브. 요즘 많이 하잖아! 좀 허접하지만 영상과 썸네일을 제작하여 업로드하고 있어!

느지막하게 웬일이냐고? K형도 잘 알잖아. 퇴직한 지 5년이 넘은 거. 이제 나도 연식이 좀 되었잖아. 그래서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나름 꿈틀대고 있는데 주위에서 자꾸 ‘나이’를 들먹거리네!

특히 병원 의사들이 그렇게 말을 마음대로 내뱉어. 병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자꾸 “나이가 들어서 그래요!” “노화 현상이라 그래요!”라고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면서 말하네. K형도 알다시피 지금은 장수 시대인데 내 연식 정도면 아직 청년이라고 하지 않아? 이젠 병원에 가기가 꺼려지네. 의사 양반들 낯짝도 보기 싫고.

아! 미안해! 유튜브 이야기하다 다른 길로 빠져 버렸네. K형도 생각해봐! 퇴직하고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뾰족한 직업을 얻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렇다고 오랫동안 현직에 근무했다고 집에서 푹 쉬고 있는 게 좋은 일인가?

K형, 생각해봐! ‘푹’ 쉬라고 하는 건, 오히려 더 힘든 일이잖아? 평생 가르치고, 연구하고, 책 쓰고 하는 것이 직업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겠어?

이렇게 한번 해보려 하는데! 지나간 나의 ‘세월’을 하나하나 기록해 보는 거. 대단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살았든 어쨌든, 녹록하지만 한 인간의 숭고한 삶을 기록해두는 것,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어? 아쉽게도 학창 생활 때 꼼꼼히 기록해둔 메모는 허망하게 없어졌지만, 다행히 교수생활 하는 동안의 비망록이 남아있으니 그거라도 하나하나 정리해 두고 싶어! 그리고 평생 내가 절차탁마한 언어에 대한 족적을 작은 유튜브 영상에라도 남기고 싶은데, K형은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나의 삶과 나의 세파에서 얻은 ‘배움’과 ‘소회’도 영상으로 만들어 두고 싶다고! 아마 제법 분량이 될 듯한데. 중요한 것은 건강! K형도 알다시피 앉아서 하는 ‘노작’은 대부분 근골격계 부분에서 문제가 일어나잖아? 물론 철저히 관리해야 되겠지만. 일단 한번 찔러보려고 해! 굉장히 흥미 있을 것 같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K형은 어떻게 생각해?

이 진솔한 ‘넋두리’에 대하여 번쩍이는 K형의 혜안을 말해줬으면 해! 한가할 때 한 잔 하면서 귀 기울이고 싶어! 그럼, 잘 있고!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던데! 2021년 한가위 지난 어느 날. 일산 백석역 근처. K형이라 늘 부르는 순박 아우 씀.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 에세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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