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름사니/박영식
어름사니/박영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9.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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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사니/박영식

 

보는 이는 손뼉 치고 웃지만,

외줄을 타는 난 

목숨을 담보로 잡혔다.

 

박영식 시인의 디카시 《어름사니》를 감상합니다.

아침은 살아있는 자의 몫입니다.

오늘도 나는 일찍 일어나서 회사로 출근하며 딱 한송이 활짝 핀 나팔꽃을 봅니다.
어쩌면 저 나팔꽃이 저희들의 삶과 꼭 닮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우리처럼 저 나팔꽃도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볼 수 없겠지요.

아침 일찍 활짝 피었다가 해가 떠오르는 무렵이면 꽃잎을 접어 고요한 밤을 맞이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모닝글로리(morning glory‧아침의 영광)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디카시의 제목 《어름사니》는 남사당패에서 가장 위험한 줄을 타는 사람 가운데서도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딱 한 송이 핀 나팔꽃도 외줄 타는 어름사니와 꼭 닮았습니다.
어름사니 속뜻을 살펴보면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오늘 이렇게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을 저 나팔꽃의 힘찬 응원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박영식 시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디카시 《어름사니》에는 오늘날 먹고 사는 일에 목숨을 내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들의 현실에 말하고자 하는 많은 속뜻과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나팔꽃은 활짝 피어있을 때 활기차고 기쁨에 차 있는 것 같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피고 저버리는 꽃이라 풋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답니다. 

한 가지 꾸준히 매달리지 않으면 결코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지요. 어떤 일을 하든 나팔꽃처럼 서두르지 않으면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꽃잎을 접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름사니가 저 외줄을 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이겨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늘의 뜻 땅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름사니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나이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오늘도 나는 서둘러서 일어납니다. 활짝 피어보지 못하고 꽃잎을 접어야하는 어름사니가 되기 싫어서가 첫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먹고사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두번째 이유입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 목숨을 내어 놓을 만큼 열심히 일해도 밥을 먹고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그것이 가장 슬픈 현실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글=박해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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