苦言인가 계획발언인가
苦言인가 계획발언인가
  • 이상문 기자
  • 승인 2009.05.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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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홀’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10급 기능직 여성 공무원이 시장이 된다는 상식을 뒤엎는 설정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물정치에 넌덜머리가 나는 시청자들에게는 호감이 갈만한 소재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비현실적 정치세계가 현실로 다가오기를 갈망한다. ‘못 사는 사람들은 잘 살게, 잘 사는 사람들은 좀 베풀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하는 여성 시장의 단순한 논리는 소시민들의 가슴에 호소력 있게 파고든다. 코미디보다 못한 정치에 시달리는 시청자들은 정치보다 훌륭한 코미디에 관심을 쏟고 있다. 드라마에서 우리를 후련하게 해주는 여시장의 행보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는 주목할 만하다.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가(政街)는 잠영(潛泳) 중이다. 그 조용한 판도를 깨고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이 수면 위로 떠올라 20일 ‘단체장 3선 연임 폐해론’을 제기했다. “단체장은 의결기관이 아닌 집행기관이기 때문에 2선 정도 하게 되면 창의력이 대부분 소진된다”면서 “단체장에게 한 번 찍힌 공무원은 10년 동안 끝이라는 생각에 공직 내부의 인사 불만은 물론, 파행적 행정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정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일견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이론적으로 추측이 가능한 주장이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경우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보았다. 단체장이 매너리즘에 빠질 경우 당장 그 지역 전체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므로 당연히 제기되어야 할 주장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내년 지방선거의 공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살만한 함의(含意)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져 조심스럽기는 하다. 정 의원이 지적한 3선 연임을 내다보는 단체장에는 시장과 중구청장이 해당된다. 누구를 지목해서 한 발언인지는 정 의원만 아는 사실이겠지만 박 시장의 경우를 두고 생각해 보자.

정갑윤 의원의 논지 가운데 ‘8년 일을 하면 창의력이 소진된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단체장이 무조건 아이디어 뱅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창의성을 가진 공무원이나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수용하고 잘 관리하는 것이 더 훌륭한 목민관이다. 단체장이 무리한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하다가 낭패를 본 사실을 우리는 전직 울주군수에게서 보았다. 그렇다고 박 시장의 경륜이 고갈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단체장이 연임할 때 한번 찍힌 공무원은 영원히 헤어나지 못한다’는 주장은 박 시장을 협량(狹量)한 지도자로 폄훼(貶毁)했거나, 조직문화에 대한 편향된 생각에 의한 발언이다. 단체장이 ‘찍는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행정을 처리한 공직자를 대상으로 표적사정을 한다는 전제가 선행될 때 가능한 말이다. 일 잘하는 공무원을 박대한다고 추정하는 것은 상식 밖이다. 돌려서 생각하면 단체장이 3선 연임을 할 동안 문제 있는 공무원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지 못한다면 퇴출해야 마땅하지, 그를 안아주지 못한다고 비난할 일은 아닌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정 의원이 어떤 공무원이 억울하게 찍혀 곤욕을 치르는 실제 사례를 확인하고 미리 경고를 한 것이라면 이 발언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정 의원의 이런 발언들은 다시 출마의사를 가지고 있는 2선 단체장들이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라는 주문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경우 지금까지 정치논리에 휘둘렸다는 비판은 없다. 일부 시의원들의 경우 정치눈치 보기 바빠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경우는 더러 본다. 시정의 수요자는 시민이다. 시민을 보고 일해야지 정치인을 보고 일할 수는 없다. 단체장의 허물에 대해서 심판할 권리는 시민들에게 있다. 일본의 경우 도쿄의 이시하라 지사, 기타큐슈시의 노무라 코지 시장의 연임가도는 유명하다. 역량이 있으면 그런 예를 어느 지역이 만들어도 흠될게 없는 것이다.

/ 이상문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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