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칠천 근(斤)’과 ‘오만칠천 냥(兩)’
‘오만칠천 근(斤)’과 ‘오만칠천 냥(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9.27 23: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국유사》 〈탑상·塔像〉 편 ‘황룡사장육’ 조(條)의 일부 내용을 소개한다.

“바다 남쪽에 큰 배 한 척이 나타나서 하곡현 사포(=지금의 울주 합포·蔚州 谷浦)에 와 닿았다. 검사해보니 공문이 있는데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서축의 아육왕이 황철 5만 7천 근과 황금 3만 푼을 모아서…(중략)…부디 인연 있는 국토에 가서 장육존용(丈六尊容)을 이루소서….”

내용을 살펴보면, 울산 하곡현 사포에 닻을 내린 큰 배에 황철 5만 7천 근이 실려있었다. 황철은 녹여서 장육존용(丈六尊容) 즉 큰 부처상을 만들 수 있는 재료로, 서축(西竺)의 아육왕(阿育王)이 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울산의 옛 지명 사포(絲浦)에 있다. 그 후 5만 7천의 숫자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서도소리에서 찾아본다.

소리를 이야기할 때 지역별 특성에 따라 경기소리와 남도소리, 동부소리, 서도소리로 구분한다. 이와는 달리 ‘남(南) 육자배기, 북(北) 수심가(愁心歌)’라는 말도 있다. 육자배기가 남도소리를 대표한다면 수심가는 서도소리를 대표한다는 말이다.

관서지방인 황해도와 평안도의 향토민요인 서도(西道)소리가 1969년 9월 2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었다. 서도소리의 명창 김정연(金正淵, 1913∼1987)과 오복녀(吳福女, 1913∼2001)가 1971년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예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필자는 1980년 12월, 선친 김덕명(金德明, 1924∼2015, 경남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예능 보유자, 양산학춤 전승자)의 공연에서 서도소리 윤평화(1945∼2009, 선소리산타령 전수 조교) 선생과 같이 어울린 인연이 있다. 필자는 다시 2003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한국음악 전공 석사과정에서 김정연 선생의 서도소리의 맥을 이어가는 예능 보유자 이춘목 선생(이하 ‘이 선생’)을 동기생(同期生)으로 만나게 된다.

이 선생은 김정연의 제자로 필자와 나이가 같다. 필자는 매주 수업 때문에 서울에 가면 늘 숙박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목욕탕과 캡슐방, 찜질방 같은 곳에서 잠자리를 해결했다. 그러다가 이 선생의 배려로 경기도 광명에 있는 〈서도소리전수소〉에서 숙박의 도움을 받고 서도소리도 배우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고, 이는 학위를 받을 때까지 계속됐다. 그 인연으로 현재도 소통과 공연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서도소리 ‘잦은 배따라기’를 소리가 좋아서 배웠다. 그 가사를 소개한다.

“여보시오 친구님네들 이내 말씀을 들어보소. 금년 신수 불행하여 망한 배는 망했거니와 봉죽을 받은 배 저기 떠 들어옵니다. 봉죽을 받았단다, 봉죽을 받았단다. 오만칠천 냥 대봉죽을 받았다누나. (후렴) 지화자 좋다. 이에 어구야 더구야 지화자 좋다.” “돈을 얼마나 실었습나. 돈을 얼마나 실었습나. 오만칠천 냥 여덟 갑절을 실었다누나. (후렴) 지화자 좋다. 이에 어구야 더구야 지화자 좋다.” (‘잦은 배따라기’의 노랫말)

‘오만칠천 냥’이란 말이 ‘잦은 배따라기’ 가사에서 발견된다. 필자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다.

‘잦은 배따라기’ 가사 속의 ‘오만칠천 냥’과 《삼국유사》 속의 ‘오만칠천 근’. 비록 돈과 황철이라 서로 다르다 해도 숫자가 같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로써 ‘5만 7천’이란 숫자의 상징적 의미는 소리와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음’과 ‘무거움’의 두 가지로 나타난다. 소리에서 ‘봉죽(鳳竹)을 받은 배’와 ‘돈 실은 배’는 뱃사공이 바라는 최대 만선(滿船)의 꿈이다.

이러한 연결고리로 볼 때 서도소리에 불교적 요소가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서도소리에 불교와 울산의 영향이 묻어있음을 알 수 있다. 울산은 시대적으로 우시, 굴화, 계변, 학성 등 다양한 지명에서 매귀악(煤鬼樂)을 비롯한 민속과 처용무, 학춤 등 민속춤의 원형을 찾아낼 수 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철새홍보관 관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