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크루즈 패맬리:뉴에이지’-추석, 그리고 가족의 힘
애니메이션 ‘크루즈 패맬리:뉴에이지’-추석, 그리고 가족의 힘
  • 이상길
  • 승인 2021.09.2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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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크루즈 패맬리:뉴에이지’의 한 장면.
애니메이션 ‘크루즈 패맬리:뉴에이지’의 한 장면.

 

근자에 와서 할리우드표 애니메이션들이 다들 그렇듯 드림웍스의 <크루즈 패밀리>시리즈도 날로 먹어선 안 된다. 그러니까 제대로 즐기려면 생각을 좀 하면서 봐야 한다는 뜻. 2013년 5월에 개봉했던 <크루즈 패밀리> 1편만 해도 그렇다. 원시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애니메이션의 메타포(은유)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걸. 단도직입적으로 <크루즈 패밀리> 1편은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해온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가치의 대립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영화에서 원시인 아버지 그루그(니콜라스 케이지)는 위험한 세상에서 동굴이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겐 아내 우가(캐서린 키너)와 장모 그랜(클로리스 리치먼), 큰딸 이프(엠마 스톤), 아들 덩크(클락 듀크), 막내딸 샌디(랜디 톰)가 있었다. 이웃 가족들은 맹수나 병, 혹은 모기에 물려 몰살당했지만 아버지로 인해 오로지 동굴 속의 삶만을 고수했던 그루그 가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루그 가족은 사냥을 위해 사흘에 한번 정도 밖으로 나오는 것 빼고는 바깥세상의 위험을 피해 동굴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큰딸 이프가 문제였다. 호기심이 많은 이프는 늘 바깥세상을 동경했고, 그 때문에 자주 말썽을 피웠다. 사냥을 마친 그날도 이프는 바깥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밤에 몰래 동굴 속을 혼자 빠져나갔고, 거기서 또래 원시인 친구지만 뭔가 다른 가이(라이언 레이놀즈)를 만나게 된다.

가이는 독특한 소년이었다. 고아였지만 불을 사용할 줄 알았고, 무엇보다 지진으로 세상에 큰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경고를 이프에게 전해준다. 그냥 한 귀로 흘리고 말았던 이프지만 얼마 뒤 실제로 지진이 일어나 동굴이 무너지면서 그루그 가족은 가이를 볼모삼아 높은 산으로 피신하기 위해 생전 처음 바깥세상 여행을 시작한다.

이쯤 되면 대강 각 나오죠? 그렇다. 동굴 안에서 쇄국을 고수했던 그루그가 보수의 가치를 상징한다면 그루그 가족에게 동굴 밖 세상을 소개해주며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선보이는 가이는 진보의 표상이다. 그렇듯 그루그와 가이는 서로 각자의 가치관을 내세우며 시시각각 충돌하는데 동굴이 무너져 밖으로 나왔는데도 아버지 그루그는 한 동안 계속 안전한 동굴만 찾았고, 가이는 동굴이 무너지면서 부동층이 되어버린 나머지 가족들에게 새로운 것들을 계속 선보이며 그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그러니까 그루그와 가이의 대립은 ‘옛 것’과 ‘새 것’의 대립으로 그건 곧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가장 원초적인 잣대이기도 하다. 지금은 구분이 좀 이상해졌지만 우리나라만 해도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시작된 조선 후기 노론과 소론, 또 근대 개화파와 척사파도 결국 ‘옛 것’과 ‘새 것’의 대립이 아니었던가.

이런 가운데 올해 개봉한 시리즈 2편 <크루즈 패밀리: 뉴 에이지>는 갈수록 더해가는 현대사회의 ‘개인주의’를 다루고 있다. 1편에서 동굴을 떠나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나선 그루그 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보다 진화된 인류인 ‘베터맨 패밀리’를 만나게 된다.

가장인 필(피터 딘클리지)과 그의 아내 호프(레슬리 만), 또 딸 던(켈리 마리 트랜)으로 이뤄진 베터맨 패밀리는 거대한 나무에 지어져 마치 아파트 같은 트리 하우스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었다. 눈여겨봐야할 건 트리하우스에는 방이 많이 있었다는 것. 그 때문에 1편에서 무너지기 전 동굴에서부터 가족들끼리 서로 몸을 포개서 잠을 잤던 그루그 가족은 각자의 방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게 됐는데 다들 만족스러워했지만 가장인 그루그만 이번에도 불만이었다. 가족 간에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없을 뿐더러 위험이 닥쳤을 때 빨리 뭉칠 수가 없었던 것. 무엇보다 필을 비롯해 그의 식구들로부터 미개인 취급을 받는 게 가장 싫었다.

물론 이번에도 결론은 1편과 비슷하다. 1편에서 위험에 노출되자 그루그는 그루그대로, 가이는 가이대로 옳았듯 이번 2편에서도 그루그패밀리의 집단주의는 확실히 위험에 효율적으 로 맞서면서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새로운 시대에 뒤를 돌아보게 했다. 그렇다고 평화로울 때 베터맨 패밀리의 개인주의가 주는 장점도 포기할 순 없는 법. 결국 답은 없고, 매사가 그렇듯 운용의 묘만이 남는다. 얼마 전 추석이 지났는데 어쩌면 명절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개인주의에 매몰돼 쉽게 잊고 사는 가족의 따뜻한 온기를 오랜 만에 느껴보라고. 2021년 5월 5일 개봉. 러닝타임 9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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