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철학 카페
학교 밖 철학 카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9.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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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은 대체로 호기심이 많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온갖 것들을 묻고, 이해가 안 되면 다시 묻는다. 이런 질문들은 대체로 삶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경험한 구체적 현상에 대한 궁금증이 질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하소연이 ‘학교는 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학교는 무엇이며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런 질문들은 살아가는 데 무척 중요한 것들이다. 나는 누구이며,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생각들이 쌓여 신념과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신념과 가치관은 말과 행동의 선택 기준이 된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을 수업시간에 다루기는 쉽지 않다. 교과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지식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학생들과 주로 철학적 탐구공동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의 수업은 학생들이 경험하는 삶의 문제에서 시작되고 근본적인 개념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탐구를 통해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이를 자신의 삶에 적용시킨다. 예를 들면 친구 사이에 발생한 갈등 상황에서 문제를 발견하면서 탐구가 시작된다. 문제에 대한 탐구를 통해 친구란 무엇이며, 우정이란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탐구를 통해 형성된 친구란 무엇이며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삶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철학적 탐구공동체 수업을 함께 연구하는 모임도 있다. 울산광역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철학적 탐구공동체 수업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초중등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소크라테스 카페’라는 교과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철학적 탐구공동체 수업을 실천하는 선생님의 수는 적은 상황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삶에서 마주하는 질문들을 마음껏 묻고 함께 탐구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없었고, 이 문제는 마음속에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차에 울산교육정책연구소에 파견 중인 박상욱 선생님이 울산 관내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철학적 탐구공동체 수업을 진행해보자는 제안을 하셨다. 한국 철학적 탐구공동체 연구회에 소속된 전국의 선생님들 중에 몇 분이 함께 강의를 해주기로 하셨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울산교육연구소 소장 방종훈 선생님도 흔쾌히 지원을 해주기로 하셨고, 어린이 철학 카페를 여러 곳에 홍보해주셨다. 많은 도움과 수고 끝에 수업이 10월 2일부터 격주로 진행될 예정이다.

사실 학교 밖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해보는 것은 처음인 데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라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사전 준비를 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교과연구회 선생님들과 모여서 첫 번째 수업에 대한 리허설을 진행해보았다. ‘자아’를 주제로 하여 ‘나답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탐구를 진행했다. 탐구를 마치고 나서도 나답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음날 리허설을 위해 탐구에 참여했던 선생님이 단체 카톡방에 소감을 남기셨다. 자고 일어나서도 나다움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이 났다고 한다. 철학 수업이 성공적이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사실 철학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어린이 철학에서 말하는 철학은 철학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탐색의 과정이다. ‘공부는 왜 해야 할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있을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을까?’와 같은 질문들을 함께 묻고 질문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함께 할 아이들이 거의 다 모아졌다. 이제 곧 진짜 어린이 철학 카페가 문을 연다. 아이들은 ‘나’, ‘우정’, ‘공부’와 같은 삶의 여러 주제들에 대해 어떤 질문과 생각을 나눌까?

정창규 고헌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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