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굴뚝마을의 푸펠’-별을 위해
영화 ‘굴뚝마을의 푸펠’-별을 위해
  • 이상길
  • 승인 2021.09.0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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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굴뚝마을의 푸펠’의 한 장면.
영화 ‘굴뚝마을의 푸펠’의 한 장면.

 

<굴뚝마을의 푸펠>에서 주인공 루비치(아시다 미나)가 사는 굴뚝마을에선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규칙이 있다. 먼저 하늘을 절대 올려다보면 안 되고, 두 번째는 꿈을 믿으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진실도 알려고 하면 안 되는데 뭐 이 정도면 딱 봐도 동화 속 이야기처럼 간질간질하다. 그런데 말이지 굴뚝마을이 생기게 된 배경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러니까 그걸 알게 되면 이 영화는 동화가 아닌 현실이 되어버리기 때문. 그렇다. <굴뚝마을의 푸펠>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이쯤 되면 그 배경이 궁금할 것 같은데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하자면 그 시작은 2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다 저편에는 꽤나 황폐한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곳에선 강도, 살인이 일상다반사였고, 사람들은 돈에 지배되고 있었다. 마침내 마음까지 돈에 지배당한 사람들은 약탈을 일삼기 시작했는데 이걸 바로 잡은 사람이 바로 ‘실비오 레터’라는 경제학자였다.

그는 만물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부패하고, 그 가치도 하락해가지만 돈만은 썩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고기나 생선보다 돈을 가진 자가 힘이 셌고, 돈을 위한 약탈이 시작됐다고 봤던 것. 그래서 레터가 고안해낸 게 시간과 함께 썩어가는 돈이었다. 바로 ‘L’이라는 화폐였는데 쌓아두면 어차피 썩으니까 사람들은 너도나도 나서서 돈을 막 사용했고, 그 덕에 마을경제도 아주 번성했다.

그런데 그걸 고깝게 보고 L의 사용을 막으려 했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중앙은행’이었다. 어떡해서든 사람들을 돈의 노예로 만들려고 했던 중앙은행은 결국 병사들을 보내 레터를 죽이고, L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레터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나중에 커서 중앙은행 몰래 만든 마을이 바로 굴뚝마을이었다. 굴뚝마을에선 L이 다시 사용됐는데 다만 마을의 존재가 들키지 않게 세상 깊숙한 오지에 몰래 만들어졌다. 또 굴뚝에서 연기를 마구 피워 하늘을 가려버렸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 진실을 모르도록 강요하게 됐던 것이다.

중반쯤 등장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손으로 무릎을 탁 쳤더랬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 마을 뭐야. 영구보존해야겠는 걸’ 싶었다. 그렇잖은가? 썩어가는 돈이라니? 그 발상 자체에 탄복했던 것이다. 심지어 돈에 영혼이 팔려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현실의 인간 세상에 써먹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그리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과연 주인공 루비치와 그의 친구 푸펠(쿠보타 마사타카)이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애타게 찾는 밤하늘의 별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그러니까 ‘가장 이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 좀 못 보면 어때?’라는 생각이었던 것. 참, 굴뚝 청소부였던 루비치는 돌아가신 아빠로부터 전해들은 별의 존재를 믿고 있었고, 어느 날 문득 나타난 쓰레기 인간 푸펠과 친구가 된 뒤 레터 2세의 통제에 맞서 세상을 바꿀 용기를 점점 얻어갔다.

참 묘한 영화지 않습니까? 아니 동화라면 그냥 레터 부자를 끝까지 악당으로 몰고 가면 될 걸 왜 뜬금없이 매력적인 철학을 들고 나와 흔들어 버리냐고. 하긴, 현실은 분명 동화가 아니고, 영원히 선한 사람도, 또 영원히 악한 사람도 없으니까. 어라? 아하! 그렇지. 그랬던 거였군. 갑자기 왜 이러냐고요? 알아낸 거죠. 그러니까 애초에 레터 부자와 루비치(또는 푸펠)의 관계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그건 그냥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던 것. 다시 말해 ‘가장 이상적인 자본주의’와 루비치가 그토록 원했던 ‘밤 하늘의 별’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였던 거다. 여기서 별은 우정, 희망, 혹은 사랑 같은 정신적인 가치가 아니겠는가. 어차피 현실에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고, 우린 늘 선택의 기로에 설 뿐이다.

생각이 이쯤 다다르니 비로소 밤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 악착같이 굴뚝 위로 올라가려는 루비치와 푸펠을 응원하게 됐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 역시 아직도 돈보다는 사랑이 더 위대하다고 믿기 때문. 허나 반백살이 다 되어가도 상처 때문에 사랑은 여전히 두렵고, 해서 내 사랑이 힘을 내길 바라면서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로 끝을 맺으련다. 사다리를 타고 굴뚝 위로 올라가려는 루비치가 자꾸만 아래를 내려다보며 흔들리자 살아생전 아빠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보야. 아래를 보니까 흔들리지. 위를 봐” 2021년 5월 26일. 러닝타임 100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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