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끝났다
드라마가 끝났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9.0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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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를 방영하는 화면에 왠지 눈길이 머문다. 지금과는 달리 앳된 얼굴의 배우,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연기자도 보인다. 지금 보면 왠지 어색한 설정, 전개가 눈에 띈다. 주고받는 대사와 톤, 공간적인 배경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것은 물론이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 직장 상사와 직원의 어울림, 부부, 친구, 이웃의 짜임이 지금 드라마와는 꽤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인기가 많았던 까닭이 어렴풋이 엿보이기도 한다.

갖가지 이야기를 버무려 전하는 드라마가 연일 나온다.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까지 드라마를 방영하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대중 영상 매체 편성 중 드라마 영역은 나날이 확장되는 느낌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시청했느냐는 기준이 시청률이다. 조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고 신뢰성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어쨌든 시청률은 날마다 발표되고 회자될 뿐 아니라 여러 이슈를 생산한다. 그러나 높은 시청률이 작품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논란이 많을수록 시청률이 올라가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는 더 많기 때문이다. 흔히 잘나가는 막장드라마의 시청률은 그 본보기이다. 시청률 우려먹기의 방편인지 요즘은 시즌제를 택하는 드라마가 대세이다.

얼마 전에 어떤 드라마가 끝났다. 시즌제로 시작한 드라마는 두 번째 시즌을 마쳤다. 몇 년간 절필하던 작가가 쓴 드라마라는 타이틀, 거침없는 관계 설정으로 유명한 작가답게 시작할 때부터 이슈의 중심이 되었다. 결국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드라마가 끝났다.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시청한 것은 아니다. 중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불륜이라는 소재가 주는 맛에 끌려 결말까지 보고야 말았다. 드라마의 결말은 지금까지 전개되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커플의 탄생을 보여주며 끝났다. 인물이 뒤섞이고, 얼크러진 관계로 엮이고 시청자를 낚는 화면으로 가득한 결말, 무엇을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는 자막을 읽으면서 참 허탈했다. 언제부터 드라마의 최종 목적이 상상 그 이상이 되었는지 어이가 없다. 이 작품을 쓴 작가의 특기가 인물 관계 비틀기와 묘한 상황 연출, 평범하지 않은 억양의 말투, 주변 인물의 부각임을 염두에 둬도 참 아이러니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언뜻언뜻 작가의 인물 탐구가 보이긴 했다. 남편의 상간녀가 찾아와 언니라고 부르는 장면, 또 다른 불륜녀가 가운만 걸친 채 찾아오자 이혼한 전처와 딸이 보듬는 장면, 의붓아들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새엄마의 상상 장면, 불쑥불쑥 나오는 귀신까지 관계의 다른 얼굴을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이 드러나는 설정이 눈에 띄었다.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어떤 것이 인간을 잇는 매듭이며 타래인지 점점 아리송한 시대이니 다양한 인간을 보여주는 일은 어쩌면 작가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끝난 후 생각이 한 곳으로 흐른다.

결말을 보고 든 생각은 한 가지. 요즘 드라마는 작가의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장르로 탈바꿈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높은 곳에 사는 이들의 허황한 상황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타 방송사 드라마와 견주어도 마찬가지다. 작가 자신의 드라마적 판타지를 구현하려 대본을 쓰는 작가가 많아서 소위 말하는 ‘막장드라마’가 판을 치는 것인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마 이것이 사실이라면 작가 개인에게는 어쩌면 일생일대의 쾌감을 주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이 일반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방영하는 드라마의 대부분이 작가를 앞세운 드라마이고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레 작가의 편에 서서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필력을 내세우는 뒷배는 물론 시청률이다. 다른 매체에 뺏긴 시청자를 되돌리는 일이 시급하니 어느 정도 시청률이 담보된 작가의 대본은 필수 불가결한 선결 작업일 것이다. ‘막장’이라는 낱말은 이제 드라마에서 자극적인 상황을 연달아 만들어도 개연성 없는 전개가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또한, 가상광고, 피피엘은 가관을 넘어 그러려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과연 시청률에 시청자의 몫은 얼마인가 하는 것이다. 아니 시청자인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의 한 명이 되기는 싫은데 자꾸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미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드라마 환경이 온 것 같이 씁쓸하다. 한참 지난 후에 봐도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드라마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어쩌면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모든 시청자들도 안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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