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은 언제나 빈틈을 노린다
유혹은 언제나 빈틈을 노린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8.31 2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겼다. 마음을 비우고 많은 걸 내려놓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마음을 내려놓는 것, 그것은 포기일 수 있다. 성공하려면 반드시 요구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열정’과는 정반대의 생각일지 모른다. 한창 혈기왕성할 때는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필요했다. 과연 지금도 그럴까. 포기하지 않을 때 탐욕이 생기고 결국 후회하게 된다. 진정한 포기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데에 있다. 충분히 포기가 아름다움일 수 있다. 그러면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진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만고의 진리다. 이 욕망이 삶의 목표를 갖게 하고, 삶의 원동력을 제공한다. 서양 철학사의 대표적인 염세주의자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학창시절에 무척 좋아하던 철학자다. 그는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고 했다. 그는 욕망의 형이상학을 정립한 철학자다. 쇼펜하우어 이전 서양의 전통 형이상학에서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 파악했으나, 그는 인간을 욕망의 존재로 보았으며 이성은 욕망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욕망을 단계별로 구분하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물질에 대한 욕구이고, 그다음이 사랑의 욕구, 권력의 단계, 그리고 명예의 욕구다. 대다수 사람은 물질과 사랑의 단계에서 그 삶이 이뤄지고 목표가 달성된다. 의식주 문제 해결부터 시작해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 자녀 출산과 교육, 자녀 결혼, 직장생활, 사회활동, 취미생활 전반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아이의 행복과 교육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모가 매우 많다. 우리나라의 경쟁적인 교육제도는 아동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아가 아동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경제적 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와 대만, 홍콩 등의 동아시아 국가의 아동 행복도가 현저히 낮은 것은 매우 주목할만하다. 아동 개인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돕고,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만족스럽게 활용하며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도와주자. 어른이 아닌 아이 눈높이에 맞추자.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사람은 권력의 단계까지 간다. 물질이나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켰거나 그 이상의 목표를 꿈꾸는 사람이 넘보는 세계다. 여기서 많은 이가 과욕을 부리기 시작한다. 행여 조그만 권력이라도 맛보게 되면 더욱 욕심을 내고, 그것을 부여잡기 위해 온갖 편법과 꼼수를 부린다. 심지어 탈법을 저지른다. 그리고 가장 높은 단계가 명예의 단계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 단계를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으로 나눠 설명한다. 또한, 불교에서는 식욕, 수면욕, 색욕, 재물욕, 명예욕 등 다섯 개로 나눠 가르치고 있다.

누구나 만족할 만한 부(富)와 불타는 사랑을 온전히 쟁취할 수 없다. 그것은 각자의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작고 초라하더라도, 나만의 명예를 가질 수 있다. 무릇 명예는 성취하기도 힘들지만 지키기가 더 어렵다. 명예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매우 간단하다. 물질, 사랑, 권력 등 아래 단계에 있는 욕망을 과감하게 포기하면 명예는 지켜진다. 굳이 포기란 말이 힘겨우면 분배라 해도 좋다. 나눠주고 나눠 갖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명예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문제는 언제나 독점에 있기 마련이다.

근래에 유혹이 찾아든다. 아니, 나 스스로 유혹이라고 단정하는지도 모른다. 제안을 들으면, 귀가 솔깃하고 달콤한 솜사탕 같기에. 욕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은 아무리 달아도 뱉으려 했다. 권력의 욕구에 가까운 일은 철저히 배척했다. “과연 이 사명이 누구를 위한 일인가?”를 중심에 담았다. 새벽 숲길을 걸으며,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별하려고 엄청 애썼다. 태화연의 윤슬에 몸을 내맡기고, 잎사귀 일렁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땀이 온몸을 적셔도 정신은 또렷해진다. 그런 뒤에 마음에 평정이 찾아왔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