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수업 안 하는 도덕교사
도덕수업 안 하는 도덕교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8.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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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도덕 교사다.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도덕 수업을 한다. 하지만 이번 학기 필자의 수업 중 절반 정도는 도덕 수업이 아니다. 도덕 수업 외의 나머지 수업 시간에는 자유학년제 프로그램들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학년제는 중학교 1학년(2개 학기) 동안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학생의 희망과 관심을 반영한 ‘자유학기 활동’을 연간 221시간 이상 편성·운영하며, 학생 중심의 수업과 이를 연계한 과정 중심의 평가를 실시하는 교육과정이다. 쉽게 말하면 1년 동안 교과 수업시간을 조정하여 주제선택, 예술·체육, 동아리, 진로탐색 활동의 4개 영역에서 13시간의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필자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는 1학기에 5시간, 2학기에 8시간의 자유학년제 활동이 편성되었다. 시간표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도덕 교과의 평균 시수가 적다 보니 도덕, 주제선택, 동아리, 예술, 진로탐색… 이렇게 5종류의 수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교사들이 수업을 설계할 때 어떤 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자율성이 확보된다.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배워야 할 내용과 이를 통해 수업 후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능력을 결합하여 나타낸 수업 활동의 기준을 ‘교육과정 성취기준’이라고 한다.

교사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수업 내용의 구성과 자료의 선택에 관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필요한 경우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업은 어디까지나 주어진 성취기준에 대한 제한적인 자율성에 불과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2년도에 고시될 개정 교육과정은 지역 분권화와 학교 교사의 자율성에 기반한 교육과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자유학년제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유학년제는 별도로 제시되는 성취기준이 없다.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교사가 프로그램의 목적과 성격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적 효과를 정하는 것이다. 교사가 하나의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담당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은 대부분 어린이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필자의 교육철학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주제선택 프로그램은 그림책 토론반을 운영한다. 그림책 토론반에서는 그림책을 읽고 독후 활동과 철학적 탐구를 진행한다. 동아리는 토론반을 운영한다. 토론반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형식에 따른 토론을 배우고 익힌다. 예술 프로그램은 그림책 세상을 운영한다. 그림책을 매개로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만들어본다.

사실 이런 수업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다. 30명을 기준으로 1반이 구성되는데 그중에 관심이 있어서 선택하는 아이들은 10명 정도이다. 그래도 수업이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된다. 전체 프로그램을 마칠 때쯤에는 나름대로 수업에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의미를 찾는 것 같았다.

예전의 학교 수업은 주로 표준적인 내용을 표준적인 아이들에게 표준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학교에서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삶이 서로 다르듯이 다른 삶을 담아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교과 시간에 다루지 못한 다양한 배움을 경험하고 익히며 성장할 수 있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창규 고헌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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