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 - 남북, 사람
영화 ‘모가디슈’ - 남북, 사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8.2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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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찢어진다’는 건 슬픈 거다. 본래 하나였던 게 둘이 된다는 건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 종이 한 장을 반으로 찢을 때도 그 잔인하고 구슬픈 소리가 진동을 하는데 하물며 사람과 사람 간의 이별은 아프기 그지없다. 찢어짐은 그렇게 상처다.

우리 근대사에서 본디 하나였던 남과 북이 찢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건 이별의 슬픔 이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으로 남과 북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고,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둘은 여태 찢어진 상태다. 슬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서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발발을 배경으로 수도 모가디슈에 위치한 남한과 북한 대사관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모가디슈>도 현재형이다. 아직도 남과 북은 찢어진 상태니까.

본질적으로 <모가디슈>는 ‘체제’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체제가 냉정해도 사람은 따뜻한 법. 내전이 발생하면서 모가디슈는 무정부 상태의 아비규환으로 전락하고, 남과 북의 대사관 사람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더 큰 위기에 놓인 쪽은 북측 대사관 사람들. 그들은 살기 위해 남측 대사관 문을 두드렸고, 생존 앞에선 똑같은 인간일 뿐이란 걸 잘 알고 있었던 남측 대사관 신성(김윤석)의 결정으로 남과 북 사람들은 한 공간에 있게 된다. 물론 엄연한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근데 지금 이 시츄에이션(상황),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나? 그렇다. 바로 거장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으로 2000년 개봉했던 <공동경비구역JSA>와 거의 비슷하다. 상황만 비슷한 게 아니다.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나 결말도 사실상 같다.

<공동경비구역JSA>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애서 목숨을 살려 준 이유로 친해진 4명의 남과 북 병사들이 체제를 초월한 우정을 쌓지만 들킨 뒤엔 서로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듯 <모가디슈>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건 분단 상황 속에서는 영원히 지속될 체제와 사람 간의 모순이 아닐까.

하지만 더 큰 모순은 남과 북은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해있다는 것. 다시 말해 물리적으로는 가장 가깝다. 일본도, 중국도, 러시아도, 미국도 우리와 이만큼 가깝지는 않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둘은 가장 멀다. 이 아이러니를 대체 어찌 설명해야 할까.

요즘 너튜브 덕에 과학뿐 아니라 역사 공부도 제법 하고 있는데 특히 1차 세계대전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은 아돌프 히틀러라는 절대악이 존재했지만 1차 세계대전은 당시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의 경쟁적인 식민지 확장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지면서 일어났다. 1차 세계대전은 탱크나 기관총 등 인류 최초로 신무기가 등장한 전쟁이었는데 가장 참혹했던 건 바로 참호전. 독일과 오스트리아 주축의 동맹국과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국 병사들은 무려 760km나 이어진 각자의 참호 속에서 대치하면서 1천460일을 싸웠다.

근데 그 참호 속이 어땠냐면 자주 내린 비 때문에 늘 물로 차 있었고, 병사들의 배설물이 역류해 넘쳐흘렀다. 그렇다고 참호를 벗어나면 바로 적의 총탄에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어 시체와 배설물로 악취가 진동하는 참호 속에서 병사들은 발이 썩어가는 등 그야말로 생지옥 같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싸워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위에서 시켜서 그랬던 거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었다. 전쟁 첫해인 1914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는데 어김없이 총격전이 끝난 그날 밤, 독일군 한 병사가 참호 안에서 갑자기 조용히 캐럴을 부르기 시작한 것. 그러자 그 노래는 다른 독일 병사들은 물론 반대쪽 진영에까지 번져 영국과 프랑스 병사들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추위와 시체로 둘러싸인 서로의 참호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그리고 마치 휴전이라도 한 듯 각자의 진영에서 무인지대로 나와 서로 포옹하고 음식도 나눠먹으며 다음 날 축구경기까지 했었다. 축구경기에선 독일이 이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 소식에 분노한 양측 수뇌부에 의해 그 다음 날 그들은 다시 적이 되어 더한 살육전에 돌입하게 된다. 전쟁을 축구경기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영상을 통해 이 사실을 처음 접한 그날 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더라. 그들이 너무 불쌍해서. 또 그들이 너무 눈물겨워서. 그리고 그 시절 유럽에서 태어나지 않은 내가 너무 고마워서.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가장 멍청한 종족인 지도 모르겠다고. 그랬다. 타이타닉에 사람이 타고 있었듯 남과 북에도 지금 ‘사람’이 살고 있다.

2021년 7월 28일 개봉. 러닝타임 121분.

이상길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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