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 가이’-양자얽힘, 시뮬레이션 그리고 사랑
영화 ‘프리 가이’-양자얽힘, 시뮬레이션 그리고 사랑
  • 이상길
  • 승인 2021.08.19 20: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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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리 가이’의 한 장면.
영화 ‘프리 가이’의 한 장면.

 

“이 세상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아닐 가능성은 10억분의 1입니다”

이는 일론 머스크가 미국 한 토크쇼에 나와서 한 말이다. 테슬라 CEO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경영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원래 대중은 권력이 하는 말에는 귀를 잘 기울인다. 헌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세계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니? 그게 말이 돼?!’라고 많이들 생각할 테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가 그렇게 말한 데는 엄연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 바로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최소단위로 미시세계를 연구하는 양자역학에서의 ‘양자 얽힘’ 현상 때문. 이게 뭐냐면 상관관계가 있는 두 양자입자는 상태가 중첩돼 있다가 관찰을 통해 어느 한 쪽의 상태가 결정되면 그와 동시에 나머지 양자의 상태도 결정돼버리는 현상이다. 어렵죠?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면 빨강과 파랑을 입힌 양자입자를 각각 상자에 넣어 하나는 지구에, 하나는 저기 먼 안드로메다 은하에 갖다 놓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미시세계에서는 둘 중 어느 쪽이든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각각 빨강과 파랑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확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 양자역학에서는 이걸 ‘양자 중첩’이라 한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 우리가 관찰을 하는 순간 비로소 확정이 되는데 만약 지구에 있는 상자 안의 양자입자가 빨강이면 안드로메다 은하에 있는 상자는 지구에서 빨강이 확인되는 순간 파랑으로 확정돼 버린다. 이게 바로 ‘양자 얽힘’이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얽혀있다는 것.

헌데 이게 우리 눈으로 보이는 거시세계에서는 말이 안되는 게 거시세계에서 가장 빠른 건 언제나 초속 30만km로 달리는 ‘빛’이다. 그런데 빛이 지구에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가는 데는 자그마치 250만년이 걸린다. 가장 빠른 빛도 250만년이 걸리는데 어떻게 지구에 있는 양자입자는 안드로메다 은하에 있는 양자입자에게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빨리 전해줄 수 있단 말인가? 방법이 하나 있긴 있다. 이 우주 밖에서 누군가 컴퓨터 프로그램에 코드를 입력하듯 정보화해버리면 된다. 그러니까 지구 상자에서 빨강이 나오면 안드로메다 은하에선 파랑이 나오도록 정보처리를 하면 된다는 것. 그렇게 빛보다 더 빠른 게 정보인데 해서 <인포메이션>의 저자인 제임스 글릭은 이렇게 말했다. “우주의 궁극적인 본질은 (입자가 아니라) 정보”라고.

이 외 양자입자의 특성 중에는 ‘양자 도약’이라는 것도 있다. 전자(電子) 같은 양자입자는 거시세계에서 사물의 움직임처럼 연속적이지가 않고 홍길동처럼 순간이동을 한다는 것. 황당하죠? 하지만 이건 실제상황이고, 양자입자의 이런 특성들을 이용하는 게 바로 전자공학이라는 학문이다. 반도체를 비롯해 양자현미경, 양자컴퓨터 등이 모두 이 특성들을 활용하고 있다.

그럼 이제 일론 머스크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최소단위들 사이에서 양자 얽힘 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그는 이 세상이 결국 코드입력으로 정보 처리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고 봤던 거고, 그건 가상현실을 통해 우리 인간들이 개발한 컴퓨터 게임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그렇잖은가? 잘 나가는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배틀 그라운드’같은 가상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생존 게임에서 특정 캐릭터에 AI(인공지능) 코드를 입력했다고 치자.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있는 그 캐릭터는 분명 우리가 만든 가상현실이 진짜 세계라고 믿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런 가정을 영화화한 게 바로 최근 개봉한 <프리 가이>라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가이(라이언 레이놀즈)는 인간이 만든 ‘프리 시티’라는 게임에서 원래는 배경인물에 불과한 존재였다. 주인공은 게임을 하는 인간 유저들이었고 그들이 조정하는 캐릭터는 모두 히어로들이었다. 헌데 가이에게는 이런 저런 사연으로 AI코드가 몰래 입력돼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애초에 입력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그러니까 삐뚤어져 점점 돌발행동을 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게임을 없애버리려는 인간들에 맞서 진짜 세상이라 믿고 있는 자신의 세상을 구하게 되는 게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프리 가이>는 멜로영화다.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었던 것. 원래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도 사랑은 가장 특별하다. 사랑에 빠지면 전 우주가 들썩이고, 그 사람으로 가득 찬다. 해서 어쩌면 양자얽힘이란 것도 사랑의 한 작용이 아닐 런지. 사랑하면 상관관계가 생기게 되고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나오지만 물리적으로 멀어질수록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진다. 텔레파시도 생긴다. 그래서 말인데 이 세계를 만든 프로그램 개발자에게 부탁 하나 하자. “어차피 엑스트라 인생인 거 아니까 성공이나 출세는 됐고, 그냥 얘기 잘 통하는 예쁜 여자 친구 코드 하나 입력해줘 봐바요. 얼른! 안 그럼 영화 속 가이처럼 엑스트라 주제에 확 삐뚤어질 테다!” 2021년 8월 11일 개봉. 러닝타임 11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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