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이상한 모임
다문화, 이상한 모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8.1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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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를 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그 아이 이름은 ‘지윤’(가명)이라고 한다. 지윤이는 적극적인 태도로 새 학기 첫날부터 다른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얼굴을 텄다. 나는 구석에 앉아 다른 아이들을 조심스레 살펴보기만 했다.

지윤이가 갑자기 나한테로 왔다. 나한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우리 동네에 사는 아이다. 나는 얌전한 편이지만 친구 사귀는 건 좋아하는 편이다.

같은 반이다 보니 지윤이를 자주 만나게 되었다. 몇 주 후 지윤이가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너 내 친구들 만나보지 않을래? 우리 같이 놀래?” 자기 무리에 들어오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망설여졌다. “어떤 아이들인데?”

얘기를 들어보니 낯설지만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불안하지만 승낙했다. 그래도 낯선 친구들을 혼자 만나는 게 두려워서 친구 세 명을 불러 함께 가보자고 했다.

모두 모이니 열 명이나 되었다. 깜짝 놀랐다. 중간에서 무게 중심을 떡 하니 잡고 있는 채연이, 친구들이 필요한 걸 요기조기 돌아다니며 잘 갖고 오는 선아, 머리가 좋아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해내는 정현이, 한 덩치 하는 데다 얼굴도 잘생긴 강수, 웃는 건 딱 순둥이인데 온몸으로 뛰어다니는 민지…. 이 친구들에게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이 있었다. 어찌 보면 이단아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비밀결사(?)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나의 결론은, 결코 밀리지 않을 쎈 멤버들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무슨 일이 생겨도 이 친구들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 무리의 구성원이 된 것에 약간 어깨가 으쓱해졌다.

여기까지 쓴 글을 다시 보니, 단순히 학생들 무리 짓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좀 쎈 학생들끼리 학교에서 모임을 결성한 후 쓴 일기 같기도 하다. 그러나 기실 이 글은 교사 연구회 탄생기이다.

다문화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야심차게 입학한 두 교사(지윤이와 나)가 첫 수업에서 만난 장면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다문화 수용성을 높이고, 이것저것 서툰 이주민 학생, 학부모들이 우리 교육 공동체에 잘 통합되어 더 풍성한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는 뜻을 가진 교사 열 명이 만난 사연이다. ‘상호문화이해교육연구회’ 탄생의 전말이다.

연구는 다문화 자문단에서 활동하는 선생님, 다문화 교육을 이미 전공한 석·박사 선생님, 다문화 학생의 진로 교육을 하는 선생님 등 다문화 교육에 뜻을 가진 선생님들 열 명이 함께 참여하는 모임이다. 우리 연구회에서 나는 선생님들과 함께 관련 도서를 읽고, 경험을 나누고 있다. 내가 가진 편견, 내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차별의식을 선생님들과 함께 하나하나 부수어 나가고 있다.

문득, 이 글 시작에 쓴 우리 연구회 탄생기에서 ‘지윤’이가 ‘나’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너 내 친구들 만나보지 않을래? 우리 같이 놀래?” 피부색, 출신지에 상관없이 ‘우리 같이 놀래?’가 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울려 퍼지는 게 우리 연구회 선생님들의 소망일 터이다. 그리고 분주하게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여름방학 전 우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다문화 전문가를 초빙하여 특강을 열었다. 그 전문가는 나의 스승이기도 하다. 유익하고 즐거운 강의가 이어졌다. 알고자 하는 학생과 깨우치려는 강사가 만났으니 시간이 바쁘게 흘렀다. 시간을 넘겨 강의와 질의가 이어졌다.

여기서 잠깐 딴 이야기! 종교사에서 ‘염화미소’는 교육의 최고 경지라 해야 할 듯싶다. 아무 말 없이 석가세존이 꽃을 들어 올리자 한 제자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었다고 하지 않던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경지. 스승과 제자 사이 가르침과 깨우침의 최고 빅뱅의 순간이 아닐까.

그 날의 특강에서 내 스승은 아무 말 없이 ‘꽃’을 들어 올리지는 않았다(대신 맥락을 관통하며 우리가 뿌린 씨앗에 단비를 내려주었다). 내 스승은 석가세존이 아니고 우리는 그의 제자만큼 영특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 강의가 누군가에게는 ‘꽃’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등불’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나침반’이 되었음이 확실하다. 다문화 교육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찬 우리 연구회 선생님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강의를 듣고 나서면서도 모두 만족한 미소를 지었기 때문이다.

나의 대학원 공부는 계속되고 있다. 공부도 하기 싫고 과제도 하기 싫고 논문 준비도 하기 싫을 때가 많다. 그래도 우리 연구회 열정 가득한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괜히 오기가 생긴다. 그리고 잘하고 싶다.

참 이상한 모임이다.

이인경 울산중앙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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