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수원 부지 활용, 숙의 과정 거쳐야
교육연수원 부지 활용, 숙의 과정 거쳐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8.12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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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앙정부 중심의 권력이 지방자치단체로 분산되기 시작하면서 행정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2000년대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정책 추진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지자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국민의 참여기회 확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지속적으로 논의됐다.

2017년에는 처음으로 숙의민주주의 실험이 이뤄졌다. 정부는 처음으로 공론화위원회라는 의사결정 방식을 통해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재개 여부를 결정했다. 공론화위원회에는 471명의 국민이 참여한 가운데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의견을 냈고, 정부는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이후 공론화위원회 모델은 전국으로 확산했다. 인천의 자체 생활쓰레기 매립지 건설, 제주도의 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경주의 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증설 등 지역에서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해 온 이슈들이 의제로 올랐다.

행정의 민주화 요구, 숙의민주주의 실험 등은 각종 정책의 추진방식이 기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된 하향적(top-down) 방식에서 주민참여에 기초한 상향적(bottom-up)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쉽게 말해, 정책 추진 과정에서 폭넓은 주민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울산 동구에 위치한 울산교육연수원 문제는 이 같은 사회적 흐름에 반대로 가고 있다. 행정편의적 방식으로 정책 추진과 결정이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대왕암공원 안에 자리한 교육연수원은 지역유지인 고 이종산(1896~1949) 선생이 1947년 부지 3만4천 평과 현금 200만 원을 내놓아 건립된 방어진수산중학교가 전신이다. 1990년부터 울산시교육청이 기증받아 교육연수원으로 사용하다 시설이 낡고 공원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20년 북구 옛 강동중학교 부지로 이전했다.

이전 논의가 시작된 2008년부터 이전부지를 두고 지역에서는 첨예한 갈등을 빚어 왔는데, 동구 주민들은 교육연수원의 동구 내 이전을 요구했다. 교육감의 공약사항이었고, 동구와 울산시교육청 사이에 지원약정서까지 체결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2017년 울산시교육청은 일방적인 설문조사,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북구 이전을 결정해버렸다. 정부가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하며 새롭게 숙의민주주의를 시도하는 기간에 울산에서는 낡은 행정이 반복된 것이다. 이제 울산시가 교육연수원 부지 활용방안을 결정해야 하는데, 또다시 일방적인 행정이 반복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방안은 2가지로 관광호텔과 복합문화공간이다.

관광호텔의 경우 울산연구원의 용역에서 최적의 안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공원법상 관광호텔이 들어설 수 없고 민자 유치에도 실패하면서 지금은 추진이 중단된 상태다. 그렇다고 무산된 것은 아니다. 동구가 대왕암공원 등을 관광진흥법에 따른 관광지로 지정하기 위한 타당성 용역이 진행 중인데, 교육연수원 부지가 관광지로 지정되면 관광호텔 건립이 가능해진다.

복합문화공간의 경우 오는 12월 울산시립미술관 개관에 맞춰 교육연수원 부지에 백남준 작품 ‘거북’, ‘시스틴 채플’,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 등을 전시하면서 그 가능성이 검토된다.

교육연수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동구 주민들의 오래된 관심사다. 현재 동구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추진 중인 관광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진 과정이 언론을 통해 통보되듯 알려지면서 동구의 의견이 벌써 배제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주민들이 많다.

동구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업을 동구 주민들과 상의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공론화를 통해 최적의 방안을 찾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행정의 모습이기도 하다. 부디 울산시는 부지 활용방안을 최종 확정 짓기 전에 동구 주민들의 의견부터 충분하게 수렴한 다음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길 바란다.

홍유준 울산 동구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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