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광복 76년, 일본 내 조선학교는 아직도 ‘조센징’
[기획]광복 76년, 일본 내 조선학교는 아직도 ‘조센징’
  • 정인준
  • 승인 2021.08.1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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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급학교 무상교육 정치적 배제 차별
재일동포 성금으로 운영… 교사월급도 근근이
남북 이데올로기에 갇힌 한국정부도 무관심
“동포애로 공평하게 교육받을 권리 지원 필요”
부산·울산·경남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봄’ 회원들이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을 멈추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부산·울산·경남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봄’ 회원들이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을 멈추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1965년 한일국교수립 후 한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모두 북한계로 간주 돼야 했습니다. 그러나 내 조국은 분단 이전의 조선입니다. 음악의 세계는 남도 북도 없습니다” <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김홍재 말하고 박성미 씀. 김영사. 2000년 발간)

2006년부터 2016년까지 9년간 울산시립교향악단을 지휘했던 김홍재(67) 지휘자는 일본 내 조선학교 출신이다. 그는 무국적 재일 조선인이라는 한계와 좌절을 딛고, 40대에 일본 양대 지휘상을 거머쥐며 거장이 되기까지 ‘차별과 멸시’를 받아 왔다. 그는 조선인이라는 신념 하나로 일본 열도를 사로잡았다.

지난달 26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무도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 경기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재일교포 3세 안창림 선수는 “재일교포들은 일본에서는 한국인,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취급 받는다”며 “나는 한 번도 일본인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안창림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일본에서 나왔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귀화하지 않았다.

그도 조선학교 출신이다. 중학교 때 유도를 시작해 대학 2학년 때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의 차세대 기대주로 떠올랐지만, 그는 수 차례의 귀화 권유를 모두 뿌리쳤다.

안 선수는 한국의 아들로 일본의 심장부에서 모국에 메달을 바쳤다.

◇일본 대법원, 일 무상 교육정책 조선학교 배제 판결

지난달 30일, 일본 대법원은 재일 조선학교를 고교수업료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제외한 것의 적법성을 따지는 5건의 소송에서 모두 일본 정부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 소송은 2013년, 일본 내 5개 조선고급학교(우리의 고등학교)가 제기했다. 그동안 일본 대법원은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줬고, 이번에 마지막 5번째 학교에 대한 최종 패소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은 공립학교에선 수업료를 내지 않고 사립학교 학생들에게는 지원금을 주는 제도로, 옛 민주당 정권 시절인 2010년 4월 도입됐다.

하지만 이 정책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계열인 조선학교엔 적용돼지 않았다. 일본의 무상화 교육정책은 조선학교 고교뿐만 아니라 유·초·중학교도 대상이다. 일본에서 오직 조선학교만이 무상화 교육정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애초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계열인 조선학교도 수혜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었지만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가 심사 동결을 지시해 적용이 보류됐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이끄는 자민당 내각으로 일본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자민당 정권은 이듬해 2월 조선학교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령(문부과학성령)을 확정했고, 조선학교 측은 이에 반발해 도쿄, 나고야(아이치현), 오사카, 히로시마, 후쿠오카 등 일본 전국 5개 지방법원에서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은 일본 정부가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은 정치적 이유에 근거한 처분이자 재일 조선인 사회에 대한 차별이라고 강조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가 조선총련과 밀접한 관계여서 지원금이 다른 용도로 쓰일 우려가 있다며 지급 대상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일본 법원은 이를 인정해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이 ‘국가 재량권의 범위’라고 최종 판단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보는 표면적인 시각이고 근본은 아직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역사관에 근거하고 있다.

황진택 교사가 일본 내 조선학교 지원에 시민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황진택 교사가 일본 내 조선학교 지원에 시민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경계에 서 있는 조선학교, 현재 풀어야 할 역사적 숙제

조선학교에는 40%의 학생이 대한민국 국적이다. 10%는 일본국적자고, 나머지 50%는 양쪽다 적을 두지 않는(일본에만 있는) 조선적(籍)이다. 전 울산시향 김홍재 지휘자가, 안창림 선수가 이 조선적으로 조선학교에 다녔다. 조선적은 아직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전의 조선 사람인 것이다. 이들을 북한 사람으로 봐야 할까? 대한민국 사람으로 봐야할까?

조선학교는 해방이후 일본을 떠나지 못했거나, 고향으로 갔다 다시 돌아온 조선 사람들이 만든 학교다. 이들은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자라나는 후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교육가들이 만들었고, 동포들이 성금을 모았다. 당시 재일동포는 60만명선 이었고, 일본 각지에 340개 학교가 있었다.

그런 학교가 60곳만 살아남았다. 대부분 유·초·중·고 학생들이 같이 다니기 때문에 실상은 10여 곳에 불과하다.

해방 이후 초기 조선학교는 조선총련을 통해 북한의 지원을 받았다. 당시 한국의 국익이 조선학교를 지원할 여력이 미치지 못했고, 북한의 지원을 받은 조선학교는 한국에 지금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대상이 되고 있다.

조선학교는 또 하나의 식민지배 아픔의 산물인 조선적 학생들이 다닌다. 일본에서 한국에서, 북한에서 조차 ‘경계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신원을 어떻게 봐야하는 지 현재 풀어야할 숙제기도 하다.

◇부산·울산·경남 시민단체들 지원단체 결성… 울산서도 지원 목소리 당부

일본 정부의 무상화 교육정책에서 배제된 조선학교는 교사의 월급도 주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 조선학교는 정치적 이유로, 이념적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재일동포들의 성금에 의해 현재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돕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나섰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어려움에 처한 조선학교를 돕기 위해 국내에서 여러 시민단체들이 ‘몽당연필’(대표 권해효)을 결성했다. 2018년에는 부산·울산·경남지역 교사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봄’이 만들어졌다. 비슷한 시기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우리학교를 지키는 시민모임’(대표 손미희)도 결성됐다.

울산에선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봄’의 공동대표로 있는 황진택(현대중·울산교사노조위원장) 교사를 중심으로 조선학교를 지원하려 하고 있다.

황진택 교사는 “‘봄’은 경남지방과 가까운 일본 규슈 시모노세키 야마구치 지역의 학교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전 봄은 규슈지역 조선학교 방문, 규수지역 학생들의 부산방문 등 교류를 하고, 학교에 민족 악기나 기자재 등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선학교의 북쪽 지원은 1990년 고난의 행군 이후 20년째 뚝 끊긴 상태”라며 “조선학교는 남북 분단의 이데올로기로 볼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한겨례’라는 역사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무엇보다 국민적 관심이 높을 때 일본에서 차별 받고 있는 그들의 지위가 향상될 수 있다”며 “국가가 할 수 없다면 시민들이 나서 동포애로 그들이 공평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적극 지원하는 게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끝으로 그는 “조선학교 학생들 대부분의 할머니 할아버지 고향은 경남지역과 제주도가 80% 가까이 되고 있다”며 “울산에서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겠다”고 밝혔다.

정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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