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되돌아보는 전화 한 통의 이야기
스승의 날에 되돌아보는 전화 한 통의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5.1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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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거나, 메일이 오면 며칠 이내로 꼭 틈을 내어서 답장(?)을 하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나를 잊지 않고 전화를 해 주고 메일을 보내준 감사의 마음에 다시 한 번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고 싶은 생각에서 그렇게 해오고 있다.

그런데 지난 해 가을에 연락을 받았는데 아직도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이가 한 사람 있다. 작년 가을 직원들과 주말을 이용해 진주, 순천 쪽을 여행하다 진주성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목소리였지만 반가움이 가득 실린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이름을 불러 주어서 더욱 당황스러웠던 그 전화의 주인공은 12년 전 시골에서 울산으로 부임해 왔을 때 함께 뛰놀고 공부하였던 제자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얼마 후 부모님과 함께 충청도로 이사를 갔던 그 아이는 이제 벌써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의 작은 학교에 발령을 받았던 이미란이였다.

한참동안을 이야기한 후 함께 교단에 서게 된 것을 축하한다며, 앞으로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멋지고 훌륭한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덕담으로 전화를 마쳤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난다. 그 여행을 끝내자마자 집에서 예전 문집을 찾아 미란이의 글과 그림을 찾아보았다.

문집에 실을 글을 마무리할 때 학교에 남아서 그림을 그려주고 함께 일을 도와주었던 미란이의 모습이 문집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 했다. 더군다나 그 아이가 이제 교단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도 있었지만, 부끄러움과 함께 진한 아쉬움이 더 많이 밀려왔다.

발령을 받고 지금까지 있으면서 정말 많은 동료 교사들과 선, 후배 교사들을 만나 보았다. 학교장이니 장학사이니 하는 직책을 떠나 교단에 발을 먼저 디딘 선배들을 모습을 보고, 이제 막 발령을 난 후배들의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저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늘 조심해 온 것 같다. 교단을 떠나는 그 순간에 나를 알고 있던 이들에게서 한 가지라도 덜 부끄러운 교사였기를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교단에 서 있기를 원했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그랬을까? 아직도 미란이에게 답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몇 번이나 메일을 보내려고 글을 썼다 지웠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말과 행동들이 지금의 내 모습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차마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미란이가 교단에 있지 않은 상태라면 훨씬 편하고 쉽게 글을 썼고 전화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교단에 서 있다는 상황이 스스로에 대해서 더욱 조심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임 시절의 열정과 생각이 이제는 좀 더 완숙해져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런저런 주위 여건 탓으로만 돌리고 편안해지려고만 하는 나태함과 미안함 때문에 미란이에게 답장을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가슴에 품고 있는 생각과 밖으로 표현하는 행동만이라도 일치되어야 할텐데, 그마저도 말 따로 행동 따로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더 위축되어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함께 근무하면서 바라보았던 많은 이들 중에서 행동과 말씀이 정말 존경스럽게 다가왔던 분이 한 분 계셨다. 승진만을 따지는 교단이 싫어서 해외 파견까지 다녀오셨던 분이셨는데, 생각하는 바를 직접 실천하기 위해 교단을 그만 두시고 나가셨다. 함께 같은 학년을 하면서 궁금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면 항상 원칙과 바른 길을 말씀하시던 그 분이 교단을 떠나셨다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승진이라는 동아줄을 잡기 위해서 평소 해오던 말들과 행동들이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 분의 당당한 모습은 아직도 내게 큰 바위처럼 다가오고 있다.

/ 김용진 교사

화정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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