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관’
‘실무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8.0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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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들은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만나는 대상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언론계에서 ‘좋은 기억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접촉대상자의 이름 석 자와 직책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는 돼야 한다. 그것이 ‘취재’라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비결인 탓이다.

암기력이 뒤처지는 기자는 그래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경찰 출입’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병아리 기자’라면 순경, 경장, 경사 정도만 입력해 두어도 되니까. 그런데 그 대상이 상급자라면 머리가 조금은 복잡해진다. 이른바 ‘계급장’이 11가지나 되는 탓이다. 경찰 직제상 경사 위로 경위-경감-경정-총경이 있고, 더 위로는 경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이 있다.

경찰 다음 단계인 ‘법조(法曹) 출입’은 좀 더 머리를 싸매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브리핑 취재’가 대세인 요즘,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지방검찰청이든 지방법원이든 ‘차장’이란 직함이 일반사회와는 달리 ‘부장’보다 높다는 정도만 알고 있어도 손해 될 일은 없다.

생각보다 골치가 아프기는 교육기관이 출입처인 경우다. 교원 혹은 교사가 초등과 중등으로 나뉜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필자는 ‘교육청 출입’일 때 ‘중등’이 중·고교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한참 지나서 알았다. 교육전문직에 ‘장학관-장학사’ 외에 ‘교육연구관-교육연구사’가 따로 있다는 사실도 그랬다.

물론 체험적 고백이지만, 헷갈리기는 행정기관이라고 덜하지 않다. 가짓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호칭이 자주 바뀌는 탓이다. 사실 모든 호칭은 법령에 근거한다. 지방공무원법 제4조(일반직공무원의 계급 구분 등) ①항은 “일반직공무원은 1급부터 9급까지의 계급으로 구분하며, 직군(職群)과 직렬(職列)별로 분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대한민국 공무원의 계급을 정리한 문서’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설명들과 만나게 된다. 다음은 그중의 한 토막. “2010년대 이후 안전행정부가 6급 이하 일반직공무원의 공식 호칭으로 ‘OOO 주무관’을 쓰게 했으나, 시행 초기 국가기관에선 ‘선생님’, 서울시와 대구시에선 ‘OOO 주임님’, 그 외 지자체에선 ‘주사님’이라고 많이 불렀다. 현재는 기관 대부분에서 6급 이하를 ‘주무관’이라고 부른다. 법령상 직급명은 각각 서기보(9급), 서기(8급), 주사보(7급), 주사(6급)이다.”

이번에는 울산시에서 새 바람을 일으켰다. ‘직위가 없는 6급 이하 공무직 직원’의 대외호칭(직명·職名)을 ‘주무관’ 대신 ‘실무관’으로 통일시킨 것. 이 과정에 관여한 시 관계자의 전언이 흥미롭다. 그동안 공무직 직원은 통일된 기준이 없이 ‘주사’, ‘주임’, ‘여사님’ 등 애매한 호칭으로 불려 왔다는 것.

이번 결정은 지난 7월 30일 울산시가 울산시 공무직노조와 맺은 ‘대외 직명 선정·부여에 관한 보충단체협약’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시의 각종 문서와 조직도, 명패에는 공무직 직위 표기와 함께 ‘실무관’이란 대외 직명이 사용된다.

흥미를 더하는 것은 인터넷의 기록이다. ‘실무관’이란 호칭이 지금도 엄연히 법원의 직명으로 쓰이고 있다고 밝힌 일이다. “법원직의 경우 8·9급 일반직은 실무관, 6·7급 일반직은 참여관·행정관·등기관·조사관 등으로 부른다. 8·9급 기능직은 주임, 6·7급 기능직은 대리로 부른다.”

어찌 됐든, 울산시청 직원들이 두루 쓰게 될 ‘실무관’이란 호칭이 ‘상생하는 조직문화 구현’이라는 시정 방향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아울러 ‘서기’ ‘서기보’를 비롯한 일본식 직명이 재치 있는 우리식 호칭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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