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스 로드’- 인생이라는 빙판길
영화 ‘아이스 로드’- 인생이라는 빙판길
  • 이상길
  • 승인 2021.07.2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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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스 로드’의 한 장면.
영화 ‘아이스 로드’의 한 장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캐나다 매니토바주에 위치한 카트카 다이아몬드 광산이 폭발 사고로 무너진다. 사고로 8명이 사망하고 깊은 지하갱도 안에는 26명이 갇히게 됐다. 숨 쉴 공기가 점점 사라지면서 이들에게 허용된 시간은 단 30시간. 그 시간 안에 어떡해서든 갱도를 뚫을 300피트 길이의 파이프를 가져 와야만 한다. 그러려면 75cm의 두꺼운 얼음이 얼린 위니펙 호수를 가로지르는 방법뿐인데 문제는 막 해빙이 시작됐다는 것. 그래도 아직은 어느 정도 두께가 있는 만큼 위니펙에서 트럭 회사를 운영 중인 짐 골든로드(로렌스 피쉬번)는 파이프 운반 요청을 받고 급하게 팀을 꾸리게 된다. 그리고 그 팀에는 주인공 마이크(리암 니슨)와 그의 동생 거티(마커스 토마스)도 있었다.

그런데 참전용사였던 동생 거티는 유능한 정비공이지만 제대 후 정신 질환과 실어증을 겪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직장에서 괴롭힘을 자주 당했는데 그걸 참지 못했던 형 마이크의 주먹질로 이번에도 다른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뒤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팀에 지원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팀은 혹시 생길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여분으로 대형 트럭 3대에 50톤이 넘는 파이프 3개를 나눠 싣고 4월의 위험한 아이스로드, 즉 빙판길을 내달리게 된다.

우리들 인생을 길에 자주 빗대곤 하지만 정확히는 ‘빙판길’이어야 한다. 일반적인 길은 지나치게 튼튼하고 안전하다. 가끔 싱크홀이 생기기도 하지만 번개나 로또 맞을 확률보다 낮다. 해서 인생이라는 건 짐 골든로드가 꾸린 팀이 대형 트럭을 타고 내달리는 빙판길과 같지 않을까. 75cm라는 두꺼운 얼음이 지탱해주지만 트럭에 실은 짐이 지나치게 무거워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도 무게를 견디지 못한 얼음이 깨지면서 사망자가 생기게 된다. 누구든 삶의 무게를 버티면서 살아가지만 현실에서 죽음은 흔하다.

하지만 인생이 빙판길일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빙판길에서는 브레이크를 걸어도 미끄러짐을 피하기 어렵듯 우리들 인생에서도 브레이크는 늘 말을 듣지 않는다. 브레이크가 말을 잘 들었다면 몸에 해로운 담배나 술 따윈 다들 쉽게 끊겠지.

또 사랑 때문에 상처받을 일도 잘 없을 테다. 맺고 끊는 게 확실하니까. 하지만 사랑은 늘 빙판길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들고, 상처받고 헤어진 뒤에는 브레이크를 걸어도 한 참을 더 미끄러져 간다.

올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줄 블록버스터급 재난 영화를 어떻게 이 따위로 복잡하게 볼 수 있는지 아마 묻고 싶을 거다. 허나 그렇지 않다. 바로 마이크의 동생인 거티의 존재 때문인데 마이크가 동생 거티를 데리고 내달린 빙판길은 사실 마이크 자신의 삶이었다. 50톤이 넘는 짐을 트럭이 싣고 가듯 마이크에게 정신질환과 실어증을 앓고 있는 거티는 자신의 삶이 짊어진 무거운 짐이기도 했다. 영화 중반까지 마이크의 표정이 그걸 잘 말해준다. 그래도 형제는 형제. 다 떠나 이 영화 엄청 재밌다. 평점 따윈 믿지 마시길.

사실 빙판길은 마이크 일행처럼 굳이 트럭에 무거운 짐을 싣고 달리지 않아도 그냥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든 곳이다. 바닥이 미끄럽기 때문인데 가만히 서 있어도 중심잡기가 힘이 든다. 인생도 중심잡기가 어렵긴 마찬가지. 뭘 해도 결국은 다시 외로워지고, 기대면 중독되고, 중독되면 아파진다. 그래도 크게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다들 꽈당 인생이고, 미끄러져 넘어졌을 땐 다시 일어나는 일만 남게 되니까. 해서 오늘도 빙판길에 홀로 외롭게 서 있는 당신과 나의 인생에 이런 위로의 말을 건네며 끝을 맺으련다. “파이팅” 2021년 7월 21일 개봉. 러닝타임 110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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