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숙제
방학 숙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7.27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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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시작되고 열흘이 지났다. 약속대로 아이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다들 방학 잘 보내고 있지? 도덕 방학 숙제 잊어버렸을까 봐 알려줍니다. 관찰, 느낌, 욕구, 부탁 잊지 말고 실천합시다.’ 카톡방 메시지 옆의 숫자들이 줄어들고 있었다.

중학교 도덕과에서는 가치 관계 확장을 전제로 나, 타자, 사회와 공동체, 자연과 초월의 4가지 영역을 다룬다. 1학년 1학기에는 대체로 나와 타자의 영역을 다루게 된다.

여기서 제시되는 타자의 주제는 가정, 우정, 사랑, 이웃이다. 즉 나와 일차적인 관계를 맺는 존재와 관련된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보는 가족,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즉, 실제로 나와 만나고 대화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부분 대화에서 시작된다.

물론 도덕 수업에서도 관련되는 내용을 다룬다. 필자의 경우 타인과의 관계 부분이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도덕적 문제들을 다루는 단원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경험에서 탐구 질문을 추출한다.

그리고 전체 탐구를 통해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대안들을 찾아보고 검증한다.

마지막으로 탐구를 통해 자신이 배운 것, 문제 상황에 대한 성찰, 자신의 삶과의 관계 등을 글쓰기를 통해 정리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때로는 더 구체적인 방법들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친구의 사소한 말에 기분이 나빠졌을 때나 부모님의 말씀이 잔소리로 들리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구체적인 상황에 필요한 삶의 기술들이 있다.

이번 학기 도덕 시간에는 삶의 문제에 대한 탐구를 마친 뒤 구체적인 대화의 기술들을 가르쳤다.

비폭력 대화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대화, 상담 기술을 조합했는데 아이들은 우선 감정을 인식하는 것부터 배웠다.

부정적인 감정의 경우 그 감정을 알아주는 순간부터 힘을 잃기 때문이다. 상대가 내 감정을 알아주면 좋지만 나 스스로 감정을 인식해도 효과는 비슷하다.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대화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대화를 위한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감정을 인식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상황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방법을 배웠다.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고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상대도 방어적인 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상대의 행동을 변화시키기보다는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한 뒤 부탁하는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아이들은 배우고 실습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상황을 평가하고, 상대의 행동을 강요했지만 연습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배움은 교실에서 연습한 것을 삶 속에서 숙달시켜야 한다. 삶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며 익힐 때, 자신의 습관이 되고 이런 습관들을 토대로 삶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방학을 일주일 정도 남기고 아이들에게 방학 숙제가 있다는 선언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온몸으로 방학 숙제를 거부했다. 아이들에게 배운 것들을 실천하고 연습하는 단계라고 하니 조금은 수긍하는 표정들이었다.

물론 숙제를 안 한다고 벌을 주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에 더 안심이 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방학을 시작하고 열흘이 지나면 한 번, 보름이 지나면 한 번 이렇게 두 번만 전체 카톡방에 알려주면 자발적으로 실천하기로 했다. 그리고 개학 첫날 ‘삶 나누기’를 통해 실천한 내용을 공유하기로 했다.

카톡방에서 “넵!”이라고 힘차게 답하는 아이들의 메시지를 보며 교실 속 배움을 얼마나 실천하고 익혀서 돌아올지 기대가 된다.

정창규 고헌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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