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 ⑥경영합리화 내세워 희망퇴직 강요한 회사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 ⑥경영합리화 내세워 희망퇴직 강요한 회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7.1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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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등산을 무척 좋아하셨던 터라 교수님과의 등산도 학업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따라다녔다. 교수님은 산행 중에도 훌륭한 지식을 많이 전해주셨다. 연구실의 정례행사, MT, 학회발표 등 숱한 과정을 거쳐 2016년 8월, 마침내 공학박사 학위를 거머쥐게 되었다.

학력이라야 ‘중졸’이 전부이지만 열심히 준비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니 모친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셨다. “그래 너는 우리 가족의 기둥이다. 참 미안하면서도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구나.”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무한경쟁 시대에 그렇게 잘나가던 노키아가 하루아침에 MS에 잡아먹히던 생각이 났다. 한때 대한민국 발전의 견인차 역을 맡았던 조선 산업의 절대 강자 현대중공업이 3년 가까이 수조 원의 적자를 낸 끝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회사에서는 위기를 극복한답시고 ‘경영합리화’라는 이름 아래 희망퇴직을 무차별적으로 강요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그때까지 교육팀장을 맡고 있었고 상사나 후배 사원들의 신임이 두터웠던 터라 희망퇴직만큼은 피해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잠시 방심했던 탓일까. 나에게도 희망퇴직의 칼날이 정조준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유가 실로 어처구니없었다. 권 박사는 다른 팀장들보다 능력이 탁월해서 지금 당장 퇴직해도 재취업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객관적이고 납득이 가는 사유를 대라고 요구했지만, 객관적 사유는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 순간 현대중공업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32년 넘게 엄청난 자부심으로 회사생활에 임했는데 하루아침에 희망퇴직을 강요하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정해놓은 시스템도 없이 무작위로 희망퇴직을 강요하니 더더욱 그랬다. 올라오는 화를 참으면서 결심을 굳히기 시작했다. ‘그래, 그동안 꾸준히 준비해 왔으니 제2의 인생에 새로 도전해보는 거야.’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이 기막힌 사실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어떻게 이해를 시키지? 하루종일 머리를 싸맸다. 희망퇴직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아내에게 큰맘을 먹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차갑게 말을 받았다. “그래 잘 됐다. 32년 넘게 몸 건강하게 회사생활 잘했으면 됐다 아이가. 깔끔하게 정리하고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지.” 아내는 나에게 엄청난 용기와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 새로운 인생을 설계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고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다. 희망퇴직을 결정하고 나니 모든 것이 편하게 느껴졌다. 10년 넘게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 30분에 회사에 도착해서 하루 일과를 기획하며 살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토·일요일에도 출근해서 책과 씨름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는 새벽 4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습관이란 참 무서웠다. 지금도 4시가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니까.

30여 년이나 정이 든 회사생활을 마무리하고 ‘2016년도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 모집’에 지원하게 되었다. 지금 뒤돌아보니 그동안 많은 일을 해냈고 이력과 경력도 참 많이 쌓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덕분에 생애설계지원센터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인생 2모작의 큰 그림도 그릴 수 있었다. 지원자 1천200명 가운데 최종 250명을 선발하는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직에 응모해서 당당히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이 있다. 생애설계지원센터 위원 여러분으로, 이분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권순두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산업설비자동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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