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밥” 무한상상 놀이터
“놀밥” 무한상상 놀이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7.1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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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놀이터란 놀지 못하는 곳이다.”

‘나에게 있어서 놀이터란 네모다.’라는 문장 완성하기 놀이를 하는 중에 3학년 우리 반 학생이 내뱉은 말이다.

‘왜 놀지 못하는 곳이지?’

순간 멈칫했다.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코로나가 새삼 떠올랐다. “어머니께서 코로나 때문에 놀이터에 가서 놀지 말라고 하세요.” 하며 아이는 목이 멨다.

갑자기 아이들이 놀지 않는 놀이터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놀이터가 내게 주는 울림은 교실에 아이들이 없는 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일어나는 세상은 어른인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또 다른 세계일 것이다.

우리 학교는 올해 ‘놀이가 밥이다! 무한상상 놀이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어느 프로젝트보다도 아이들이 신이 났다. ‘놀이터’라는 이름만 들어도 아이들은 눈이 반짝반짝, 얼굴엔 싱글벙글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수업의 자료로 이보다 더 좋은 수업 감은 없어 보인다. 놀이터가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말해보면서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기도 하고, 유리통 속에 갇히기도 하였다. 미세먼지가 나쁜 날은 통유리 속에서 안전하게 놀고 싶다고 하였다. 자신이 상상한 놀이터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거침없이 이유를 잘도 말하였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시설에서 놀아라’가 아닌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간다’는 의미가 듣던 것 이상으로 나에게도 많이 생각할 점을 던져주었다. 교육청 놀이터 사업과 관련하여 연수하는 자리에서 담당 장학관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어떤 놀이터가 만들어지든지 결과물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 아이들이 원하는 시설로 놀이터를 만들어보라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과연 놀이터가 제대로 완성은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놀이터는 어떤 건지 물어봐 주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은 놀이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들의 멋진 생각에 꽃도 달아주고 옆 반 선생님들께 자랑도 하였다.

전교생이 함께 같은 주제로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복도에는 선배들의 생각과 후배들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전시되었다. 덩달아 지나가는 선생님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의 그림을 유심히 보았다.

아이들은 다른 학년 선생님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미세먼지 예방 유리통 놀이터, 어릿광대가 나와 곧 춤출 것 같은 트램펄린 놀이터 등 아이들이 생각하는 놀이터는 참으로 무궁무진하였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아이디어 제안서에 그리고 또 그리면서 밤이 새는 줄도 모르는 아이도 있었다. 놀이터가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이 자체로도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의 숨은 공간을 찾고, 놀고 싶은 놀이터를 그려보고, 설계도 해보며 상상할 수 있었던 이 시간이 먼지로 뒤덮여 있던 보석을 찾아낸 것 같다. 그동안 왜 이런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상상 한 번 해보지 못했을까. 이렇게 가까이 있는 공간이고 아이들이 자주 가는 곳인데 무심코 지나쳐 온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친 긴 여정 끝에 이제 곧 놀이터 공사가 시작된다. 학생자치회 이름으로 놀이터가 탄생하는 날,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만 해도 한 여름밤 산타가 된 기분이다. 야외에서 학생자치회와 함께 치러질 개장식은 우리 학교 학생들의 놀이 문화가 새롭게 재탄생되는 뜻깊은 날이 될 것이다.

안현정 울산중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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