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와 장마
장화와 장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7.1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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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부산 동래구 장전동에 살았다. 가까운 거리에 온천천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리를 몰고 온천천을 찾았다. 새끼오리 떼는 대야에 물을 담아 헤엄치게 했다. 오리 다섯 마리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어머니가 장화를 사주셨다. 그날부터 의기양양하게 한 손에 작대기를 들고 오리를 몰았다. 그 당시 동네에서 내 또래에 장화 신고 오리 몰이하는 친구는 드물었다.

어느 날, 양손에는 야장(野帳=현장 노트)과 망원경을, 발에는 장화를 신고 조류 조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울산학춤’을 연습하던 제자들이 인사를 건넸다. 그 중 말 붙이기를 좋아하는 한 제자가 불쑥 “선생님은 장화 신은 두루미이네요.” 했다. “글쎄, ‘장화 신은 고양이’를 유튜브에서 봤다마는, ‘장화 신은 두루미’, 싫지는 않구먼, 고맙다.” 그 이후 필자에게는 ‘장화 신은 두루미’라는 별명이 하나 더 보태졌다.

장화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조류 조사에 필요한 신발이다. 아침이슬과 물가를 탐조할 때 편리했다. 수년간 흠뻑 젖는 운동화의 불편한 경험에서 장화로 바꿔 신게 됐다. 울산에는 겨울에도 간혹 비가 오기에 매일 신는 장화는 조류 조사에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장화가 없던 시절에는 나막신이 장화를 대신했다. 그 흔적을 대중가요에서 느낄 수 있다. ‘정다운 우리 님 오시는 날에/ 홍수에 비바람 불어온다네/ 님 가신 곳을 알아야 알아야지/ 나막신 우산 보내지 보내드리지….’(대중가요 ‘늴리리 맘보’, 1957.김정애)

울산의 한 지역도 장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한 시대에 울산에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라는 말이 있었다. 과거 옥교동, 학성동 지역 이야기다. 이 지역에는 비만 오면 침수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생긴 말이다. 주민들의 입에서 혹은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현재도 성남, 옥성, 학성, 내황 등지의 배수펌프장이 이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

올해는 7월 3일부터 늦은 장마가 시작됐다. 작년보다 열흘에서 많게는 보름 가까이 지체됐다고 한다. 장마는 남쪽의 제주도에서부터 서서히 시작되어 북상한다. 매년 장마는 보통 6월 19일께 제주도를 시작으로 6월 23일께 남부지방, 6월 25일께 중부지방에 장맛비가 내린다고 한다. ‘따뜻하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과 북쪽에 있는 차고 습한 오호츠크해 고기압의 힘겨루기에서 만들어진 정체전선인 장마전선에 의해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현상’이라고 장마를 정의한다.

우리나라 대추 생산지로 유명한 충북 보은군에는 장마와 관련된 속담이 전해진다. ‘장마가 길면 보은(報恩) 아가씨들이 들창을 열고 눈물을 흘린다’라는 말이다. 장마가 길면 대추의 생육과 수확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대추가 보은의 대표 농산물이기에 생긴 말이다. 대추의 작황이 좋아야 시집갈 혼수를 넉넉하게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마라는 말은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민간어원설을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먼저 ‘장마(長魔)’ 설이다. 장마는 비가 오래도록 내리는 성가신 귀신 같다고 해서 ‘장마(長魔)’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장마(長麻)’ 설이다. “장마가 짧으면 갑산(甲山) 색시들은 삼(麻)대를 흔들며 눈물을 흘린다”라는 속담에서 비롯됐다. 장마가 짧으면 삼베의 원료인 마(麻)의 키가 덜 자라서 삼베의 생산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마야 길어라”라는 아가씨들의 탄식이 장마(長麻) 설이다. 마지막으로 ‘장마(長馬)’ 설이다. 장마는 ‘큰 말’을 의미한다. 이때 ‘마(馬)’는 생물학적 말이지만, 한자로는 ‘크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큰 말은 마용(馬龍) 중에서 큰 용(大龍)이란 의미이다. 장마전선은 마치 큰 용이 길게 벋쳐있는 형상으로 생각했다. 민속에서 말은 용으로 나타난다. 취우(驟雨), 장마(長馬), 팔등로(八騰路), 등나무(?) 등에 마(馬)자가 들어가는 이유이다.

김성수 철새홍보관 관장·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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