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톤 핑크’-작가인 그분(神)에게
영화 ‘바톤 핑크’-작가인 그분(神)에게
  • 이상길
  • 승인 2021.07.0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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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톤 핑크' 한 장면.
영화 '바톤 핑크' 한 장면.

 

어떤 의미에서 작가라는 직업이 위대한 이유는 자신의 작품 안에서는 신(神)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생각에 따라 한 사람이 죽고 사는 건 일도 아니다. 물론 작품 안에서. 하지만 단순히 작품 안에서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엔 그것도 하나의 ‘세계’라는 점에서 쉽게 보긴 어렵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다른 세계는 쉽게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시고에 많이들 빠져 산다. 그러니까 이곳 지구라는 행성의 지표면에 근거를 둔 인간세상만이전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가 내린 뒤 갑자기 생긴 물웅덩이도 하나의 세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이런 저런 생물이나 미생물들이 나름 세계를 형성하며 잠시 살아간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뿐. 해서 외계인이 여태 지구를 찾지 않는 이유에 대해 우리를 그 물엉덩이나 개미들처럼 미개한 생명체로 보기 때문이라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의 존재(세계)를 무시하고 살듯 훨씬 앞선 문명의 외계인들도 우리의 존재(세계)를 이미 알지만 “으이구 이 미개한 것들, 그래 열심히 살아봐바”라는 식으로 무시하고 지내는 지도 모른다는 것. 아니 그것 말고 아예 우리가 현실이라 말하는 이 세계가 사실은 누군가가 만든 가상 세계이거나 소설 속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 <매트릭스>나 <소피의 세계>라는 철학소설이 또 그런 설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무튼 그런 작품들 속에서 작가는 신(神)과 같은 존재고,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안드로이드인 데이빗(마이클 패스밴더)이 인간들을 향해 자주 내뱉었던 “큰일은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는 대사처럼 혹시 모르지. 우리가 창작을 하듯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도 누군가, 그러니까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작품 안일지. 그리고 조엘 코엔 감독의 <바톤 핑크>는 이런 가정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다.

보통사람을 찬양하는 드라마를 써서 유명해진 극작가 바톤 핑크(존 터투로)는 헐리웃 영화계에 진출하기 위해 LA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영화사 사장 잭 립닉(마이클 러너)의 제안에 핑크는 한 번도 본적 없는 레슬링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시나리오가 진전이 없어 고민하던 핑크. 그러다 그는 호텔 옆방 투숙객인 찰리(존 굿맨)를 알게 되고 그와 친해지게 된다. 또 자신이 평소 존경해온 유명작가 WP 메이휴(존 마호니)도 우연히 알게 된다. 하지만 메이휴는 알콜 중독으로 망가져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메이휴의 유명 작품들이 사실은 그의 비서인 오드리(주디 데이비스)가 썼다는 걸 핑크는 알게 된다. 해서 그는 오드리에게 시나리오 작업과 관련해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서로 외로웠던 두 사람은 핑크의 방에서 하룻밤 사랑을 나누게 된다. 헌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오드리는 피투성이가 된 체 죽어있었고 이후 영화는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마치 ‘신의 장난’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작가인 바톤 핑크에게 일어났던 일도 그러했는데 보통 사람의 보통 인생을 찬양해온 그에게 느닷없이 살인누명이 쓰였을 때 과연 어떤 기분이겠는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영화는 이후 옆방 투숙객 찰리의 정체와 핑크에게 일어나는 이해불가한 일들을 통해 마치 그분(神)에게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아니,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현실에서도 우리가 그분에게 가끔 하는 비슷한 말이 있잖은가? “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이 타이밍에 영화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사실 데이빗이 “큰일은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고 말을 했던 건 그가 우주선을 타고 자신들의 창조주를 만나러 가는 인간들을 돕는 안드로이드였던 만큼 인간들은 자신(안드로이드)을 왜 만들었지 궁금했던 거였다. 데이빗에게 인간은 창조주니까. 그리고 그 질문에 찰리(로갠 마샬 그린)는 이렇게 답한다. “그냥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현실에서 그분(神)도 우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냥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됐기 때문은 혹 아닐 런지. 그러니까 소설을 쓰듯 재미를 위해. <바톤 핑크>에서도 진중함과는 거리가 먼 신의 장난이 엿보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핑크는 호텔방안에 걸린 이름 모를 ‘해변의 여인’ 그림을 자주 쳐다보는데 마지막엔 그 그림과 똑같은 장면을 현실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 순간 영화 속 현실과 누군가가 그린 그림은 경계가 무너져 내린다. 그게 만약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면 인간이 그린 그림을, 그분(神)도 똑같이 그린 셈이다. 장난치나? 젠장. 그렇다면 작가인 그분(神)에게 당신의 작품 속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행인19740213)으로써 한 가지만 묻자. “대체 코로나19 사건은 언제까지 끌고 갈건데요?! 재미없거든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진짜 너무 한 거 아니가.”

1992년 10월 31일. 러닝타임 116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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