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고유의 굿 문화 ‘허개 굿’
울산 고유의 굿 문화 ‘허개 굿’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7.0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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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화단에 십수 년을 터줏대감으로 자리한 채송화는 올해 여름도 해가 뜨면 한결같이 송이 송이마다 방긋방긋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 이웃집 부부 한 쌍 백봉은 이에 뒤질세라 거듭거듭 목청껏 노래한다. 배경 막처럼 둘러싸인 문수산 푸르름은 꾀꼬리 울음소리를 살찌운다. ‘찌익 찍찍찍∼’ 울음소리 달고 다니는 작은 딱따구리는 꾀꼬리가 다가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옮겨가며 먹이 찾기에 바쁘다. 사랑 찾는 멧비둘기는 이따금 날아올라 두 나래를 부닥쳐 소리를 내며 허풍떨지만 스치듯 비치는 황조롱이 그림자에 몹시 놀라 잽싸게 숲 찾아 내려앉는다. 세월은 한 달, 두 달, 석 달 흘러 또다시 한 절기 여름으로 다가온 문수산 아래 천상 동네 7월 첫 번째 주 일요일 아침 풍경이다.

일요일마다 찾는 세 번째 권역인 사일지역의 조류조사도 끝내고 돌아왔다. 삼족오(三足烏=‘태양’을 달리 일컫는 말)는 준마(駿馬=썩 잘 달리는 말)의 속도로 이미 중천이다. 시원한 오미자 한잔을 챙겨 들고 휴식을 만끽하려고 낡은 툇마루에 궁둥이를 붙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아는 사람 당주(堂主=굿당 주인이라는 말)였다. ‘허개 굿’이 들어왔다고 했다. 일전에 부탁했던 터라 꾸물거릴 필요도 없이 급히 카메라를 챙겼다. 10㎞ 거리를 단숨에 달려 도착했다. 굿당에는 용선, 번, 허개 등이 화려하게 장엄으로 걸려있었고 부정 치기 장단이 요란했다. 곤줄박이 박새 한 마리는 이미 문 앞에 마련된 사자상을 찾았다. 박새는 장단 소리에 익숙한 듯 사자상 공양미를 독차지하고 여유 있게 발자국을 남기면서 쪼고 있다.

보통 울산 토박이 강신무(降神巫=신이 내려서 된 무당)는 큰굿을 ‘허개 굿’으로 부른다. 마침 허개를 만든 장인이 있어 소개를 받았다. 바쁜 일정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무엇을 허개라 부릅니까?” “(장엄한 것을 가리키며) 바로 이게 허개입니다.” “허개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 허개에 불을 밝히면 만존친(萬尊親=여러 조상님을 일컫는 말)이 알아보고 찾아옵니다. 마치 등댓불의 역할입니다” “이러한 허개는 어디서 비롯되었습니까?” “예, 이 허개는 동해안별신굿에서 사용되는 것을 모방한 것으로 압니다” “허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형태입니까?” “아니죠. 자꾸 변합니다. 장인에 의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허개를 주문하면 큰굿으로 봐야 합니다.” 마지막 대답은 묻지 않았는데도 친절하게 덧붙여주었다.

허개는 굿 장엄물의 일종으로 ‘허개’ 혹은 ‘헛개’로 부른다. 허개의 본질은 ‘화개(華蓋)’로 화려하게 장식된다. 일반적으로 나들이에 햇빛과 햇볕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는 도구인 양산(陽傘)을 임금의 행차에는 일산(日傘)이라 부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깨달은 자의 나들이에 이동할 수 있는 도구는 화개 혹은 보개(寶蓋)이며, 고정된 것은 천개(天蓋)라 부른다.

울주군 두동면 은편리에는 ‘헛고개’, ‘허고개’ 등으로 불리는 고갯길이 있다. 고개 이름의 의미는 관심사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로 전승된다.

먼저 경순왕의 체념 탄식설이다. 경순왕이 문수산의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길에 동자로 몸을 바꾼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해 저지른 실수를 탄식하는 말 ‘할 수 없다’는 변천으로 전승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몹시 배고픈 증세인 허기(虛飢) 설이다. 두동, 인보, 봉계 등 지역민이 울산 읍에 장을 보러 갔다가 이 고개에 도달할 즈음 ‘허기’ 즉 배고픔의 시장기를 느끼는 장소라는 의미의 ‘허기 고개’가 센 발음으로 ‘헛고개’로 고정된 것이다.

불교에서 화개는 부처, 보살, 나한 등 깨달은 자의 행차에서 햇빛 가리개로 사용했다. 그 후 불보살의 왕림, 좌정 등의 상징성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울산 허개 굿은 오래된 울산 고유의 굿으로 불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허개를 건다’는 것은 불보살을 초청하여 모신다는 의미이다. 필자가 허개굿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현장을 방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개굿’은 울산 고유의 강신무(降神巫=신병을 통해 무당이 된 사람)에 의한 굿 문화의 흔적이다.

김성수 철새홍보관장·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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