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통도사 수중전시물
사라진 통도사 수중전시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7.0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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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는 분(지인)이 SNS로 보내온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축총림 통도사의 장경각 앞 인공연못이 사라지고 없는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연못이 있던 자리는 어느 결엔가 메워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잔상만 아른거릴 뿐이었다.

장경각 앞 인공연못이라면 울산의 국보 두 점,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암각화가 화사한 옻칠로 치장한 채 수중 전시로 멋을 부리며 뭇 대중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던 자리가 아니던가. 그래서 놀라움은 두 배로 더 컸다. 빼어난 두 작품을 마지막으로 본 지 한 달 반 남짓 됐지 싶은데,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6장의 사진을 다시 꺼내 찬찬히 살펴보았다. 지인의 보충설명을 듣고 나니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연못이 있던 자리는 다시 자갈마당으로 돌아가 있었다.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발 기구로 밀어낸 머리처럼 바닥 일부가 희끗희끗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점이었다.

그다음 사진 역시 눈을 의심케 했다. 실물 크기 암각화의 그림판을 받쳤던 것으로 보이는 패널(판넬)이 장경각 마당 북쪽의 한 작은 건물 언저리로 밀려나 있었던 것. 지인은 그 패널이 다름 아닌 옻칠 그림판이었다고 귀띔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그 이유가 궁금했다. 지인이 나름의 견해를 말했다. “자세히 보니 작품의 부분 소재인 합판과 삼베 사이에 칠했던 오공본드(접착제)의 접착성분이 물기를 만나 떨어지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습디다. 그 사이로 물이 새 들어가서 작품이 뒤틀리고 만 겁니다.”

지인의 말을 간추리면, 두 옻칠 작품이 어느 날 느닷없이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은 ‘수중 전시’ 때문이란 것이었다. 옻칠을 여러 겹 했으니 작품에 물이 스며들 리 없다는 막연한 믿음이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는 지론이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시·보존 처리 과정에 ‘과학’보다 ‘비과학’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성보박물관 관계자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엄밀한 검증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러한 사실은 울산시 관계자도 확인해 주었다. 3∼4주 전쯤에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것. 그동안 두 옻칠 작품과 같은 품격의 작품 제작을 통도사 측에 의뢰해서 울산에서 영구 전시하는 구상을 굳혀오던 울산시로서는 때아닌 복병을 만난 셈이 됐다. 혹자는 ‘수중 전시’가 아닌 ‘육상 전시’라면 처음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자는 주장을 편다.

어쨌거나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이 3년에 걸쳐 불탑을 쌓듯 공들여 만든 세계적 작품이 참으로 허무하게 일순간에 사라지다니…. 어찌 보면 그 수하에 유능한 인재가 없어서 생긴 변고인지도 모른다. 웃어른이 한숨을 짓게 만들었다면 그 아래 누군가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4월 21일 화려한 안치 행사까지 치른 암각화 옻칠 작품들. 너무도 빼어나서일까, 잡다한 구설수도 적지 않았다. 연못에 물을 대고 빼내는 일이 수월치 않아 물빛이 탁해지기 예사였고, 일부 불자나 아이들이 동전을 집어 던져 작품 변질 우려를 낳은 일도 가슴 쓰린 경험들이었다.

이제 통도사 장경각 앞에서는 더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암각화 옻칠 작품 두 점. 하지만 이번 일로 세기적 예술혼의 작가 성파스님이 낙담하고 붓을 꺾는 일만은 제발 없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그 바람은 울산시민들의 염원이기도 할 것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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