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클턴의 ‘위기극복 리더십’ 上
섀클턴의 ‘위기극복 리더십’ 上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6.3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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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섀클턴(1874~1922, 영국)은 634일간이나 남극의 얼음 덩어리 속에 갇혀 있다가 27명의 전 탐험대원과 함께 살아 돌아온 영웅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섀클턴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최근까지 필자도 그랬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에선 사정이 다르다. 미 국방부를 비롯해 IBM, 타임지, 딜로이트, 록히드마틴, 월마트, 시티은행 등 수많은 대기업이 섀클턴의 리더십을 경영에 접목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그의 리더십을 교육받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지난 1000년 동안 세계에서 최고의 탐험가가 누구인가?”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다. 1위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2위 제임스 쿡, 3위 닐 암스트롱, 4위 마르코 폴로에 이어 5위에 어니스트 섀클턴이 선정됐다. 당연히 그가 무척 궁금해졌다.

현대인이 가장 가까이서 만난 탐험가는 닐 암스트롱이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필름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7월 21일, 인류 최초로 달에 첫 발걸음을 내디딘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날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암스트롱이 달을 밟았고, 뒤이어 달 착륙선 이글에 같이 타고 있던 올드린도 달을 밟았다. 이후 약 2시간 30분 동안 그들은 달의 표면에 성조기를 세우며 관측 장비를 설치하고, 달의 암석과 토양 샘플을 채집하는 등 임무를 수행하고 착륙선에 돌아온다. 그동안 콜린스는 사령선에 남아 달 궤도를 돌면서 착륙선의 귀환을 기다린다.

아폴로 11호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지만, 달에 첫발을 내디딘 암스트롱만 기억할 뿐, 올드린이나 콜린스는 기억하지 못한다. 처음이 아니고 최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처음이나 최초에 대한 가치는 극명하기에 누구나 처음이나 최초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올림픽의 의의는 참가하는 데 있다’는 올림픽 정신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최초가 아니더라도 깊은 의미를 남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사회가 섀클턴과 같은 사람들을 좀 더 많이 기억하는 것이 외형적인 1등에만 매달리는 사회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죽음의 문턱에서 처절한 시련을 겪은 탐험대원들에게 유일한 축복이 있다면 그건 바로 섀클턴의 부하라는 점이다. 탐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이 생존 드라마에서 섀클턴은 대원들과 항상 함께했다. 섀클턴을 비롯한 대원들은 남극 탐험 길에 일기를 남겼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혹한 속에서 그들이 남긴 일기 한 토막을 읽어본다. “섀클턴은 은밀히 자신의 아침 식사용 비스킷을 내게 내밀며 먹으라고 강요했다. 내가 비스킷을 받으면 그는 저녁에도 비스킷을 줄 것이다. 나는 도대체 이 세상 어느 누가 이처럼 철저하게 관용과 동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죽어도 섀클턴의 그러한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수천 파운드의 돈으로도 결코 그 한 개의 비스킷을 살 수 없을 것이다.” 평소엔 아주 단순한 기록일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평범한 행동은 분명 아니다.

영하 30℃ 이하의 추위 속에서, 거대한 빙벽 앞에서 수백억 원의 돈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이럴 땐 비스킷 하나가 바로 생명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일기 한 토막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나? 남극대륙 횡단 실패라는 기록은 이러한 인간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은 과거에 무엇을 얼마나 배웠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더 배우려고 하는 의지와 과거에 배운 지식을 버릴 줄 아는 용기가 미래의 핵심 경쟁력이다.

우리의 영웅 세종은 늘 3가지 말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어찌하면 좋겠느냐?”, “경의 말이 참 아름답다.”, “나는 잘 모른다.” 신하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경청하고, 논의 중에 나온 주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자신을 한없이 낮춘 세종이다. 진정한 섬김과 소통의 리더십이 아닐 수 없다. 온 백성을 각별한 애민사상으로 감싸 이끄는 리더의 품격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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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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