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 ②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 ②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6.2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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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부산직업훈련원을 졸업한 후 가스용접과의 긴 싸움이 현대중공업 훈련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듬해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전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동안의 훈련 강도가 약했던지 또다시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2번째 쓴맛을 본 그날 나는 전주 덕진공원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전국기능경기대회를 마치고 나서 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선수 생활을 1년 더 할 것인지 아니면 생산현장으로 내려갈 것인지, 고민이 엄청났다.

옛말에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했듯이 기능올림픽 선수 생활을 미련 없이 청산하고 생산현장으로 향했다. 그러고 나서 내 생각을 지도교사에게 이야기했더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도 말고 훈련이나 열심히 하라’는 말만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약 3주간 밀고 당기는 지루한 기 싸움이 계속되었다.

나는 이미 중대 결심을 했기에 주저 없이 생산현장을 고수했다. 1985년 11월 16일, 드디어 생산현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날따라 얼마나 추웠던지 안전차림에 방한복까지 껴입고 현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그런데 반장님의 말이 내일부터 야간작업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한동안 주야 2교대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약 2주 정도 야간작업을 하면 주간 조로 바꿔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내리 3개월이나 야간근무만 시키는 것이 아닌가. 3개월 동안 선배 사우들이 생산성 향상에 몰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잘하라는 특명을 받았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선배 사원들이 하는 것을 보고, 어깨너머로도 보고, 궁금하면 물어보기도 하면서 주어진 시간을 매우 알차게 보냈다. 야간작업 3개월을 모두 마치고 나니 반장님이 “그래, 3개월간 고생 참 많았다”면서 나에게 장비 1대를 주시면서 말했다. “그래 이 장비를 가지고 자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게.” 또 한 번 감격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야간작업 3개월간 배운 기술과 기능올림픽 선수 생활에서 익힌 것을 한데 묶어 두각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350mm 초대형 강판을 SAW 기법으로 용접하는 프로젝트에 신입사원인 내가 발탁되었다.

이 경험은 훗날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주야 꼬박 2주 동안 용접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용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변형과 무결점인데, 그중에서 강판의 다이아고날(대각선치수)이 ±5mm 이내에 들지 못하면 제품을 버려야 하는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용접을 모두 마치고 품질을 검사한 결과 용접변형과 NDE 모두 완벽하게 나왔다. 또 한 번 나의 실력을 검증받는 기쁜 순간이었다. 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결과 나의 팀장님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석탑 산업훈장을 수훈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생산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후배가 찾아와서 창원기능대학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운영지원부에 갔더니 담당자는 창원기능대학에 갈 사람이 이미 내정되어 있다며 내려가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은 포기하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1주일 정도 흘렀을까. 운영지원부에서 긴급호출이 떨어졌다. 헐레벌떡 찾아갔더니 나의 이력서를 이리저리 보면서 얼른 창원기능대학 입학 서류를 준비해서 지원하라고 했다. 또다시 찾아온 기회이기에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창원기능대학 기능장 과정에 입학했다. 다시 말해 1년 동안 유학을 온 셈이었다. ▷③편으로 이어짐

권순두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산업설비자동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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