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월드컵, 그리고 유상철-영화 ‘친구’
친구, 월드컵, 그리고 유상철-영화 ‘친구’
  • 이상길
  • 승인 2021.06.17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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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의 한 장면.
영화 ‘친구’의 한 장면.

 

며칠 전 그냥 아무 이유없이 곽경택 감독의 <친구>라는 영화가 당겼다. 갑자기 삼겹살이나 치킨이 당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생각해봤더니 인생작인데도 여태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없었고, 해서 글이라도 쓸 요량으로 아주 오랜 만에 다시 보게 됐다. 근데 진짜 먹어도 먹어도 며칠 지나면 또 당기는 삼겹살이나 치킨처럼 또 봐도 재밌더라. 특히 시종일관 뿜뿜하는 구수한 부산사투리는 다시 들어도 그 맛이 마치 노릇하게 잘 구워져 쌈장과 뒤섞인 삼겹살이나 속살로 파고들기 전 바삭한 치킨을 연상케 했다. “내는 뭔데? 내는 니 시다바리가?”부터 “죽고 싶나?”,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 “마이 컸네. 동수”, “원래 키는 좀 더 컸다 아이가. 니 시다바리 할 때부터”, “니가 가라. 하와이”, “고마해라. 마이 무따 이이가” 등등. 그 시절 친구들끼리 참 많이도 따라 했었더랬다.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20년이 지났다. 이 영화가 2001년 3월에 개봉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다시 보니까 어떻게 글을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보는 내내 그냥 그 시절에 대한 추억에 잠겨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이 영화가 개봉하고 1년 뒤 이 나라엔 다시 없을 특별한 축복이 잠시 내렸었기 때문이다. 바로 2002 한일 월드컵. 그랬다. 영화 <친구>로 시작된 밀레니엄에 대한 추억은 월드컵으로 이어져 그날 밤 유튜브를 통해 2002 한일월드컵 한국팀 전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다시 보게 만들었다. 사실 꼭 월드컵 때문만은 아니었다. 밀레니엄이 막 시작된 그 즈음엔 영화 <친구>말고도 브라운관에선 배용준을 한류스타로 만든 <겨울연가>와 직장인들의 월요병을 없애줬던 <세친구>란 드라마도 한참 뜰 때였다. 이런 것들이 만들어낸 그 시절만의 특별한 공기가 있었는데 그게 내 20대 후반이었고, 아마도 그때가 잠시 그리웠던 것 같다.

다시 월드컵 이야기로 돌아와 또 봐도 2002 한일월드컵 최고의 경기는 역시나 이태리전. 왠지 악역 같은 느낌의 이태리팀에 맞서 안정환 선수가 골든골로 역전승을 거뒀을 때의 희열은 내 인생 통틀어 원탑이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그 때를 말한다. 공교롭게도 19년전 오늘(6월 18일)이 바로 이태리전이 있었던 날.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다들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2002 한일월드컵이 한민족의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건 그렇게 ‘행복의 넓이’가 아닐까 싶다.

뺏고 빼앗기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행복은 넓어봐야 고작 가족이다. 다시 말해 좋은 일이라고 해봐야 그 기쁨이 가족을 벗어날 일이 잘 없다. 같은 직장이나 조직 내에서도 경쟁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2002년 6월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은 빈부격차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행복했다. 지상에 천국이 존재한다면 아마 그때가 아니었을까. 아직도 생생하다. 준결승 상대인 독일전을 보러 가던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벌어졌던 소름 돋았던 풍경이. 다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누군가가 시작한 “대~한민국!” 구호에 맞혀 우린 하나가 됐다. 그 하나됨은 건너편 칸도, 더 건너편 칸도, 더더 건너편 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그때 잠시, 행복의 넓이는 한반도 전체만 했고, 앞으로도 그만한 넓이의 행복은 다시 보기 힘들 거라 감히 장담한다.

아무튼 그 뒤로 2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며칠 전 그때 그 태극전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유상철 선수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됐다. 한일월드컵 한국팀의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에서 황선홍 선수가 첫 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난 솔직히 긴가민가했었다. 경기 초반 폴란드에 다소 밀리는 모습 탓에 그냥 잠시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 전까지 한국축구가 그랬거든. 또 그 동안 월드컵 본선에 수도 없이 진출했지만 여태 첫 승을 거두지 못했던 징크스도 있었고. 하지만 후반전 유싱철 선수의 시원한 두 번째 골을 보고는 ‘이번 월드컵에서 일 내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었더랬다. 당시 별 기대 없이 자취방에서 혼자 봤던 난 그 골 이후 바로 밖으로 튀어나가 학교 노천극장에서 보던 친구들과 합류했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출근도 잊은 채 밤늦도록 축제를 즐겼었다.

유상철 선수가 떠난 2021년의 6월, 40대 후반인 지금은 그때와 달리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축제가 되어 버렸고, 2002년의 6월은 축제를 넘어 이젠 ‘전설’이 되어 가고 있다. 해서 별 볼 일없는 삶에서 잠시나마 천국을 맛보게 해준 히딩크 감독과 그때 그 태극전사들, 특히 고인이 된 유상철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다시 하고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1년 3월 31일 개봉. 러닝타임 11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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